매일신문

[기고] 공연생산도시가 되려면

1, 2주 전 토요일 저녁 6시, 봉산문예회관 4전시실. 철사를 이용한 작품들이 공중에 매달려 있고 그 그림자들이 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30여 명의 관객들은 작은 초를 들고 핸드폰 소리를 내며 마임을 하는 연기자와 해괴망측한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인과 함께 작은 퍼포먼스를 벌이며 이색적인 체험을 즐거워했다. 두어 달 전 대구문화재단 2층 대회의실. 서정시 읽는 도시 프로그램에 출연한 신명고 3학년 학생의 서정시 낭송이 끝난 후, 우레와 같은 박수와 감탄의 소리가 터져나왔다. 수개월 전 어느 직장인 친구 하나는 '인류 최초의 키스'라는 소극장 연극을 본 '감동평'을 1시간도 넘게 털어놓았다. 박창근 밴드가 우리 지역 내의 작은 공연장에서 몇 차례 공연을 가졌고 이를 본 관객 100여 명은 곧바로 골수팬이 되어버렸다. 크게 인지도 있는 작가는 아니지만 작가 L의 작품전을 우연하게 본 어느 대학생은 L씨의 작품이 자기한테는 그렇게도 크게 와 닿는다고 침을 튀기며 설명을 하였다.

공연생산도시! 난 이 말 자체가 잘 이해되질 않지만 어찌 되었든 다양하고 많은 예술 행위들이 양산되는 행복한 도시라고 생각하면서 글을 쓴다. 공연생산도시가 되려면 앞서 언급한 그러저러한 예술가들과 관객들 간의 작지만 의미 있는 무언의 대화들이 자연스럽고 또 많아지는 것이 그 무엇보다 기초가 아닐까 생각한다. 해리포터를 쓴 작가는 에든버러시 어느 카페에서 그 작품을 썼다고 한다. 인구 50만의 도시, 일주일의 반은 우중충한 날씨, 도심에는 삼성에서 지어준 인터넷센터 빌딩 정도가 유일하게 화려하게 여겨지는 시골 도시. 오가는 사람들조차 8월 축제 때가 아니면 썰렁한 도시. 그 도시 작은 골목길 한쪽의 허름한 카페에서 그 작가는 해리포터를 썼다.

요란하게 할 것도 없고, 화려하게 할 것도 없다. 예술의 본질은 자신만의 정성스러운 가치 지향이다. 예술가 자신만의 당당함. 굽히지 않는 소신. 관객인 나 역시도 이 세상을 살면서 진실하고 성실한 당당함이 있지 않은가. 그 당당함끼리의 만남이 해리포터도 만들어내고, 아바타도 만들어 낸 것 아닐까. 모든 것과 소통할 필요도 없고 또 대다수의 이들과 소통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예술가이든 일반관객이든 바로 나 자신의 당당한 자기다움이 중요하다. 이러한 당당함을 허용해주는 사회, 환경이 필요하다. 작위적으로 뭔가를 하려고 한다면 이런 데에 신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

김성열 대구문화재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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