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항생제에 내성을 갖고 있는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된 환자가 국내에서 잇따라 발견됐다. 이달 9일에 이어 14일 보건당국이 검출한 슈퍼박테리아는 'NDM-1형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으로 요로감염과 폐렴·패혈증 등 다양한 감염 질환을 일으켜 최악의 경우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도 더 이상 슈퍼박테리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슈퍼박테리아에 대한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떠도는 소문처럼 슈퍼박테리아는 인간 생명을 위협하는 공포의 대상일까? 아니면 과장된 측면이 있을까? 슈퍼박테리아에 대해 알아봤다.
◆박테리아 VS 항생제
슈퍼박테리아는 항생제로 죽일 수 없는 세균을 말한다. 정확한 학문적인 표현은 '범내성균'이다. 슈퍼박테리아의 출현은 역설적이지만 페니실린의 발견과 무관하지 않다. 박테리아와 항생제 간 목숨 건 전쟁은 페니실린이 발견되면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페니실린 발견 이전에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은 박테리아였다. 14세기 유럽 인구의 70%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흑사병을 비롯해 박테리아가 인간을 공격한 사례는 적지 않다. 이런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은 항생제를 개발했다.
최초의 항생제는 1928년 영국의 생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이 푸른 곰팡이에서 발견한 페니실린이다. 그런데 '기적의 약'으로 불리는 페니실린에 대한 내성균이 출현하면서 항생제와 박테리아의 쫓고 쫓기는 싸움이 시작됐다. 똑똑한(?) 박테리아가 자신을 죽이려는 페니실린에 맞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 것이다. 이에 인간은 페니실린보다 강한 항생제인 메티실린을 개발했지만 매티실린에 대한 내성균도 출현하게 됐다. 항생제를 독하게 만들수록 박테리아도 진화를 거듭하며 강해졌기 때문. 결국 항생제 개발→내성균 발생→보다 강력한 항생제 개발→다시 내성균이 출현하는 말 그대로 박테리아와 항생제의 끝없는 전쟁이 되풀이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제약사들이 항생제 개발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많은 돈을 투자해 항생제를 개발해도 몇 년 안 돼 내성균이 출현하기 때문에 투자 비용을 회수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점이 항생제 개발을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로 꼽히고 있다.
◆싸움은 계속된다
최근 국내 연구진이 슈퍼박테리아 치료제 개발의 토대를 마련해 국내외 학계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이제철 경북대 의학전문대학원 미생물학교실 교수와 김승일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박사팀은 지난달 발표한 논문을 통해 슈퍼박테리아의 일종인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의 항생제 내성 기전을 밝혀냈다. 이제철 교수는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에 카바페넴·티게사이클린 두 가지 항생제를 투약해 박테리아가 어떻게 내성을 갖는지를 규명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슈퍼박테리아를 정복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법정감염병 슈퍼박테리아
질병관리본부가 법정감염병으로 지정한 슈퍼박테리아는 'NDM-1형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을 비롯해 'MRSA'(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 'VRSA'(반코마이신 내성 황색포도상구균) 'VRE'(반코마이신 내성 장구균) 'MDR PA'(다제 내성 녹농균) 'MDR AA'(다제 내성 아시네토박터균) 등 6종류다.
'NDM-1형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08년이다. 인도 뉴델리에서 수술을 받았던 스웨덴 환자가 처음으로 감염된 사실이 확인된 것. 항생제 효력을 방해하는 효소를 생성하는 슈퍼박테리아로 현존하는 항생제 가운데 가장 강력한 카바페넴에 대한 내성을 가지고 있다. 1961년 영국에서 처음으로 보고된 'MRSA'는 수술 환자 등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이 주로 감염된다. 지난해 사망한 마이클 잭슨이 'MRSA'에 감염되었다는 소문도 있다. 1966년 일본에서 발견된 'VRSA'와 1986년 유럽에서 처음 확인된 'VRE'는 한때 항생제의 마지막 보루라 불렸던 반코마이신에 내성을 가진 박테리아다. 반코마이신은 'MRSA'를 치료하기 위해 개발된 항생제였지만 많이 사용되면서 반코마이신에 죽지 않는 내성균의 탄생을 불러왔다. 'MDR PA'와 'MDR AA'는 여러 가지 항생제에 내성을 가지고 있어 'Multi-drug Resistant'(다제 내성)라는 이름이 붙었다.
◆호들갑 떨 일 아니다
한국에서도 슈퍼박테리아가 확인된 만큼 조심은 해야 하지만 과도한 불안감이나 공포심은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예방이 가능하고 전염성도 크지 않으며 건강한 사람의 경우 쉽게 감염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치료약도 개발돼 있는 경우가 많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MRSA'는 보통 건강한 사람에게는 무해하며 'VRE'와 'MDR PA'도 병원성이 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화제가 된 'NDM-1형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의 경우 인도(150명)를 비롯해 파키스탄(70명), 방글라데시(20명), 영국(80명), 호주(20명), 미국(3명), 싱가포르(4명) 등 14개국에서 감염 환자가 발생했지만 현재까지 사망한 경우는 1건에 불과했다.
또 보건당국의 역학조사 결과 국내 감염 환자는 50~70대로 비교적 고령이었지만 대부분 자연 치유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장내 세균(장 속에 존재하는 세균)인 까닭에 호흡기를 통한 감염은 이뤄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게다가 '티게사이클린' '콜리스틴'이라는 항생제로 치료할 수 있다. 다만 '콜리스틴'은 신장에 부작용이 있어 신장이 나쁜 환자에게 사용하기 어렵고, '티게사이클린'은 세균이 내성을 갖기 쉬운 구조로 돼 있어 함부로 사용하기 어렵다는 점이 단점으로 꼽히고 있다.
◆예방이 최선
슈퍼박테리아는 대부분의 항생제가 듣지 않기 때문에 감염되면 치료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최선의 방어책은 예방이다. 이제철 교수는 "슈퍼박테리아는 주로 의료기관 내에서 감염되기 때문에 의료기관이 위생수칙을 철저히 지키고 감염경로를 차단하면 감염률을 현저히 낮출 수 있다. 또 화장실 이용 후 손을 씻는 등의 개인위생만 철저히 해도 충분히 감염을 예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기적으로는 항생제 오남용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항생제를 쓰면 쓸수록 박테리아도 이에 대응해 힘을 키우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항생제가 남용될 경우 슈퍼박테리아만 경계해서 될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지금은 별 볼 일 없는 세균이라도 언제 슈퍼박테리아로 변할지 알 수 없다는 것. 전문가들은 항생제 사용을 가급적 자제하고 불가피한 경우에는 정확하게 사용하는 것이 슈퍼박테리아 출현을 막는 방법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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