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 속의 인물] 아편쟁이가 영웅으로, 주더

아편쟁이에 첩을 여럿 거느렸다면 타락한 자의 전형이 아니겠는가. 그런 인물이 마음을 다잡고 훗날 혁명의 영웅이 됐다. 주더(朱德'1886~1976)는 사상의 옳고 그름을 떠나 중국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인간승리의 표본이다.

주더는 1886년 오늘, 쓰촨(四川)성의 농가에서 태어났다. 형제가 열셋이었지만 부모는 끼니 걱정 탓에 다섯 명을 우물에 빠뜨려 죽일 정도로 가난했다. 청년시절 군벌(軍閥)에 들어가 소장까지 진급했다. 마약을 하고 여러 명의 여인을 거느린 호화생활을 즐기다 1921년 홀연히 독일로 유학을 갔다. 유학중 저우언라이(周恩來)를 만나 39세 때 공산당에 입당했다.

중국 공산화에 마오쩌둥(毛澤東)보다 팔로군사령관인 주더가 더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도 있다. 타고난 야전지휘관에 농민군의 게릴라전술을 실현한 전술가였다. 외양부터 우직한 농민처럼 보였고 전장에서도 시시껄렁한 농담과 노래를 즐겼다. 농민군은 그를 절대적으로 따랐다. 마흔 나이에 진로를 바꿔 '거지'나 다름없는 농민군을 이끌고 거대한 중국을 정복했으니 대단한 자기변신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정치가로서는 순발력이 떨어져 2인자에 만족해야 했다. 권력은 늘 정치가의 몫이 아니던가.

박병선(사회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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