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원태의 시와 함께] 음악들(박정대)

너를 껴안고 잠든 밤이 있었지, 창밖에는 밤새도록 눈이 내려 그 하얀 돛배를 타고 밤의 아주 먼 곳으로 나아가면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에 닿곤 했지, 산뚱반도가 보이는 그곳에서 너와 나는 한 잎의 불멸, 두 잎의 불면, 세 잎의 사랑과 네 잎의 입맞춤으로 살았지, 사랑을 잃어버린 자들의 스산한 벌판에선 밤새 겨울밤이 말달리는 소리, 위구르, 위구르 들려오는데 아무도 침범하지 못한 내 작은 나라의 봉창을 열면 그때까지도 처마 끝 고드름에 매달려 있는 몇 방울의 음악들, 아직 아침은 멀고 대낮과 저녁은 더욱더 먼데 누군가 파뿌리 같은 눈발을 사락사락 썰며 조용히 쌀을 씻어 안치는 새벽,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음악은 이처럼 언어의 유려하고 서정적인 리듬감만을 통해서도 깊은 울림으로 우리에게 전해지기도 한다. 이때 음악이란 도저한 파토스에 다름 아니어서, 청춘의 격렬비열도이거나, 처마 끝 고드름에 매달린 몇 방울의 눈물이거나, 싸르락싸르락 봉창을 두드리는 밤눈일 수도 있다. 조금 더 확대해 보자면, 바로 당신이거나, 당신과 내가 함께했던 사랑의 추억이거나, 불멸이거나, 불면이거나, 입맞춤이기도 한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이 음악으로 흐르는 이 지경에선, 언어도 단지 '음악들'처럼 흐르고 흐를 수밖에.

이윽고 음악은 당신만이 아니라, 내 머나먼 청춘의 격렬비열도에도 흐를 것이다. 창밖에 밤새도록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밤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얘기이다. "밤새 겨울밤이 말달리는 소리, 위구르, 위구르 들려오는" 밤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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