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구, 남성만 하나요?"
'레드폭스'는 대구의 유일한 여성 족구 팀이다. 2008년 2월 창단해 올해로 3년째 활동하고 있다. 10년 전부터 여성 족구 팀이 생겨난 울산이나 전북에 비해 구력이 짧다. 환경도 열악하다. 전용구장도, 실내구장도 없다. 먼지 풀풀 날리는 학교운동장이나 공원의 빈터가 그들이 연습하는 유일한 공간이다. 바쁜 일상 때문에 회원들이 한꺼번에 모이기도 쉽지 않다. 회원이 적어 남자들 틈에 끼어 실력을 가다듬고 있다. 그래도 열의만큼은 어느 팀에 뒤지지 않는다. 목표도 확실하다. 여성 족구 불모지를 개척하고 있는 레드폭스 회원들은 "대구에 많은 여성 족구 팀이 생겨 여성들만의 리그전을 갖게 될 때까지 열심히 공을 차겠다"며 각오를 다지고 있다.
◆ "족구, 남성 전유물 아니다"
"족구를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이 비웃어요. 많은 종목 중 왜 하필 족구냐는 것이죠. 남편조차 이해를 못 하는 걸요."
최근 족구가 여성까지 영역을 확대하며 전 국민의 생활스포츠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대구에서만큼은 여전히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지고 있다. 족구를 하겠다는 여성들도 몇 명 안 되지만, 족구를 하는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다. 레드폭스의 김창희(44) 씨는 "반바지 차림에 다리를 들었다 내렸다 하는 자세를 민망스럽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김 씨는 족구를 하다 든 멍을 남편에게 감추려 침대 모서리에 부딪혀 생긴 상처라고 둘러댄 적도 있다. 대구에서 여성이 족구를 하려면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이다.
울산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10년 전부터 여성 족구 팀이 생겨났고, 현재 팀 수만 5개에 이른다. 팀끼리 경쟁을 하다 보니 실력도 수준급이다. 대구시족구연합회 장석연 사무국장은 "울산 팀들은 집에서 경기장까지 20~30분을 달려 몸을 풀고 2, 3시간 운동을 한 뒤 집으로 되돌아갈 때도 러닝으로 기초체력과 실력을 키우는 훈련을 일주일에 3번 정도 반복하고 있다"고 했다.
맘 편히 운동을 할 수 있는 건 남편들의 전폭적인 지지 때문이기도 하다. 여성 족구를 삐딱하게 보는 대구와는 달리 울산은 많은 회원이 남편과 함께 족구를 즐긴다. 남편이 여성 팀의 감독을 맡는 경우도 많다. 당연히 실력도 전국 최강이다. 울산은 11월 광주에서 열린 2010 전통종목 전국대회 족구에서 여성부 1위를 차지했다.
◆대구 유일의 여성족구 팀 '레드폭스'
레드폭스는 우여곡절 끝에 창단됐다. 오른쪽 수비를 맡고 있는 김창희 씨는 고교 때까지 배구 선수로 뛰었다. 그가 족구에 입문하게 된 건 2006년 9월. 평소 족구가 배구와 닮았다고 여기고 있던 차에 아이들과 인라인을 타러 공원에 들렀다 이옥미(45) 씨와 유현하(38) 씨가 공을 차는 모습을 보고 족구의 매력에 빠졌다. 3명이 의기투합했지만 한 팀을 구성하려면 1명이 모자랐다. 함께 족구를 할 회원을 찾으려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김창희 씨는 "목욕탕에서 운동 좀 하겠다 싶은 사람에게 족구를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달서구족구연합회의 도움에다 이후 김미광(43) 씨가 합류하며 힘들게 대구 유일의 여성 족구 팀이 탄생했지만, 잦은 멤버교체로 내실을 다질 수 없었다. 50대 아주머니들이 족구를 해보겠다고 찾아왔지만 얼마 버티지 못하고 그만뒀다. 지금은 창단회원이던 유현하 씨가 무릎이 좋지 않아 그만뒀고, 김현숙(25)'임주희(28)'박성자(46)'정하영(40) 씨가 새롭게 합류하면서 공식 멤버는 7명이 됐다. 하지만 각자 생활 때문에 한꺼번에 모이기는 쉽지 않다. 달랑 4명이 대회를 나갈 때도 많다. 한 명이 경기 도중 부상을 당하면 곧바로 몰수 패를 당해야하는 형편이다.
이들은 주로 남성클럽에 홍일점으로 실전감각을 키우고 있다. 육상 장거리 선수로 활약했던 만능 스포츠우먼 이옥미 씨는 7년 전부터 남성들과 어울려 족구를 해왔다. 힘이 실린 남자의 스파이크를 받지 못해 자존심을 구진 그녀는 반년을 홀로 학교운동장에서 벽을 연습상대 삼아 기술을 익히기도 했다. 덕분에 지금은 남자들 틈에서도 한자리를 차지할 수준이 됐다.
◆대구 여성족구 활성화 "함께 해요"
레드폭스 회원들의 족구 사랑은 대단하다. 다른 시도에 다 있는 전용구장이나 실내구장 하나 없지만 눈, 비에도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여름에는 따가운 빛에 얼굴이 타기 일쑤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장 국장은 "비록 여성 팀이지만 직장 체육대회 때 우승하는 남자팀 정도는 가뿐히 제압할 정도"라고 했다. 이왕 족구를 시작한 만큼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보고 싶은 욕심도 있다. 하지만 족구를 하겠다는 회원이 없다.
이옥미 씨는 "축구하는 여성은 많지만 족구를 하겠다는 여성은 없어요. 축구를 하면 족구는 당연히 잘하겠다고 여기지만 오히려 반대예요. 넓은 축구장과 달리 좁은 족구장에서는 작은 발놀림, 힘 조절 하나가 바로 점수와 연결될 만큼 세밀한 기술이 필요하죠. 순발력을 높여주니 여성들에게 이만한 운동도 없죠"라며 족구를 자랑했다.
레드폭스는 11월 열린 전통종목 대회에서 단 4명이 출전해 예선리그를 통과했지만 부족한 인원에서 오는 체력적 부담을 극복하지 못해 8강 토너먼트에서 탈락했다. 김창희 씨는 "회원이 몇 명만 더 있어도 상위권 성적을 낼 수 있다"며 "대구의 여성 족구를 이끌고 활성화할 회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대구시족구연합회 053)559-5115.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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