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괜한 말을 꺼냈다가 아내에게 또 타박을 받았다. 10년 뒤에 현재보다 위상이 가장 하락할 것 같은 직업을 꼽는 한 미국 여론조사 결과에서 기자가 1위에 올랐다는 암울한 이야기였다. 위상 추락의 '주범'은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등장으로 꼽혔다. 신문'방송 등 기존 매체 중심으로 이뤄졌던 여론 형성 과정이 온라인을 통한 쌍방향 소통 중심으로 바뀐다는 전망이다.
며칠 전 그 '생태계 천이' 현장을 목격할 수밖에 없었다. 바다 건너 '위키리크스' 이야기가 아니다. 롯데마트의 5천원짜리 '통큰치킨'을 둘러싼 논란에서였다. 알려진 대로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은 자신의 트위터에 영세업자를 두둔하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파장은 즉각 일파만파로 번졌고, 결국 대기업의 백기 투항으로 끝났다.
이후 이명박 대통령까지 가세하면서 이 논란은 소비자 선택권이 우선이냐, 영세상인 생존권이 먼저냐의 논쟁으로 비화됐다. 그새 인터넷에는 롯데마트 인근을 칭하는 '닭세권', 닭을 사려고 일찍 마트에 오는 '얼리어닭터', 통큰치킨 판매를 중단시킨 정치인을 뜻하는 '계사오적'(鷄死五敵) 등의 신조어가 넘쳐나기도 했다.
물론 대기업이 이처럼 신속하게 무릎을 꿇은 배경이 청와대 수석비서관의 '권위' 때문인지, SNS의 가공할 위력 때문인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전자라면 다소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소통을 한답시고 열심히 '트윗질'은 하지만 일방적인 '훈수'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비슷한 사례는 최근 정부가 발표한 내년도 경제성장률을 둘러싸고도 나타나고 있다. 민간 경제전문기관과 한국은행조차 3.8~4.5% 성장을 점치고 있지만 지식경제부는 이달 15일 업무보고에서 5% 성장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정부가 지나치게 낙관적이란 지적이 잇따르지만 정부의 입장은 확고해 이 대통령은 20일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분명 달성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와 관련, 여권 한 관계자는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다 보니 참모들이 제 목소리를 못 내는 게 아니냐"고 꼬집었다. 대통령에게 직언할 분위기가 영 아니라는 관측이다. 연평도 피격 이후 대통령의 첫 메시지가 '확전 자제'였느냐는 논란에서 촉발된 일련의 청와대발 말 바꾸기 해프닝을 둘러싸고선 '역대 최약체 대통령실'이란 비판도 나오고 있다.
19일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트리플 기념일'이었다. 칠순 생일이자, 결혼 40주년에다 대선 승리 3주년이었다. 뒤집어 말하면 집권 시한이 개념적으로는 2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성공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이 대통령으로선 조급증이 생길 만한 시점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 당'정'청은 홍보에 문제가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정부 홍보 관계자 모임에선 좀 더 전략적인 홍보에 나설 것을 다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일방적 홍보가 아니라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듣기에 불편한 비판의 소리에는 귀를 닫고, 하고 싶은 '주장'만 펴는 것으로는 진정한 리더십으로 평가받기 힘들다.
청와대를 취재하는 기자들의 공간인 '춘추관' 로비에도 크리스마스 트리가 등장했다. 하지만 흔히 보는 트리보다는 왠지 단조롭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산타 할아버지도 있고, 구슬도 매달려 있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꼬마전구가 청와대를 상징하는 파란색 일색인 탓이다. 내년에는 알록달록, 여러 색이 함께 어우러지는 청와대 트리를 볼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이상헌(서울정치팀)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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