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행-경북을 걷다] (51) 다시 가고픈 그 곳(상)

1년간 걸은 400여㎞ 동행길…숨어있던 '경북의 재발견'

늘 다니던 익숙한 길에서 낯선 무언가를 만난 적은 없습니까? 걸을 때나 차를 탈 때도 마찬가집니다. 무심코 지나쳤던 그 길에 '이런 곳이 있었나'하며 새삼 놀라는 일을 누구나 경험합니다. 지난 일 년간 이어진 '동행, 경북을 걷다' 시리즈는 바로 이런 놀라움과 기쁨의 연속이었습니다. 거창하게 이름을 붙이자면 '경북의 재발견'인 셈입니다. 일 년간 함께 길을 걸은 10명의 화가도 한결같이 "이런 곳이 있었나?"라며 감탄했습니다. 차로 이동한 거리를 포함하면 무려 1만㎞에 이릅니다. 한 걸음씩 내디딘 거리는 400여㎞나 됩니다. 1천 리를 걸은 셈이 됩니다. 이제 50곳의 동행길 중에 14곳을 간추려 두 차례에 나눠 소개하고자 합니다. 어느 곳이 더 낫다거나 못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유난히 고생하며 걸었던 길이기에 다시 가보고 싶은지도 모릅니다.

##자연 그대로의 생태경관 고스란히 간직

◆울진 왕피천 계곡길

왕피천은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생태경관보존지역이다. 그만큼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바위나 비탈길에 나무계단을 만들어놓아 그나마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다른 접근로가 없기 때문에 탐방로에 쓰인 목재는 일일이 지게에 지고 옮겼다. 하류 굴구지마을(근남면 구산3리)에서 상류 속사마을(서면 왕피리)까지 대략 10㎞. 계곡길을 따라가다가 다시 산으로 올라가고, 그러다가 다시 계곡으로 내려오기를 수차례 거듭한다. 그 때문에 거리에 비해 시간이 많이 걸린다. 중간에 휴게소가 없기 때문에 간단한 먹을거리를 챙겨가는 것이 좋다. 차를 아래쪽에 두고 왔다면 학소대나 거북바위를 반환점 삼는 것도 좋다.

##산길'강길'들길 함께 즐기는 명품 풍광

◆상주 낙동강길

상주 경천대에서 시작해 상주자전거박물관(당시 한창 공사중이었으나 지금은 개관했음) 앞 경천교를 건너 비봉산 정상까지 이르는 구간. 산길과 강길, 들길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코스다.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어서 더욱 좋다. 해발 230m의 비봉산은 MTB 동호인을 위한 길도 닦아놓았다. 경천교에서 바라보면 낙동강이 휘도는 비봉산줄기가 아스라이 펼쳐진다. 산꼭대기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광은 가히 일품이다. 4시간가량 걸리는 구간이지만 길이 험하지 않아 누구나 거닐 수 있다. 비봉산 청룡사를 둘러본 뒤 강변길을 따라 드라마 '상도' 촬영지를 거쳐 돌아오면 된다. 탐방로 곳곳에 표지판이 많아 길 찾기는 쉽다.

##옛이야기에 나오는 고요함 가득한 숲길

◆영양 대티골 숲길

여름에 꼭 다시 가고싶었지만 기회를 놓쳤다. 일월산 자락에 있는 대티골은 자연치유생태마을이다. 발목까지 푹푹 잠기는 지난겨울에 찾았을 때 고요함이 가득한 그 마을은 마치 옛이야기 속에서 튀어나온 듯했다. 마을 뒤편 대티골 숲길을 따라가다가 일월산 등산로를 통해 다시 마을로 내려올 수 있다. 숲길 안쪽에는 반변천 발원지도 있다. 봉화로 이어지는 옛 국도가 마을 옆에 있다. 그 길을 따라 걷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국도라기보다 굽이굽이 오솔길이라는 표현이 더 맞다. 영산(靈山)으로 불리는 일월산 산행도 빼놓을 수 없다. 차로 오를 수 있는 길이 있지만 그보다는 대티골에서 월자봉에 오르는 등산로가 훨씬 아름답다.

##걷거나 자전거 타도 되는 평탄한 보물길

◆영천 보현산 하늘길

지금도 보현산을 떠올리면 화려한 눈꽃부터 눈에 아른거린다. 천문대에 올랐을 때 펼쳐진 마치 선물 같은 풍경이라니. 흔히 차를 타고 천문대까지 올라서 주변만 둘러보고 내려온다. 하지만 정작 보물처럼 숨은 곳은 산자락에 펼쳐진 웰빙숲길이다. 천문대 바로 아래쪽 천수누림길은 1㎞에 불과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 때문에 보현산 서쪽에 있는 '작은보현산' 자락에 있는 숲길을 놓쳐선 안된다. 평탄한 길이어서 걷거나 자전거를 타도 된다. 산 아래 별빛마을에 있는 '천문과학관'까지 더하면 금상첨화다.

##낙동강 들판 이육사의 '광야' 들리는 듯

◆안동 광야 오솔길

도산서원 뒤편 도산을 넘어 퇴계종택에 이른 뒤 하계마을-광야오솔길-이육사문학관-청량산 조망대까지 이어지는 구간. 하계마을 뒷산으로 올라 광야오솔길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꼭 한 번 가봐야 할 길이다. 시인 이육사가 낙동강이 굽이 도는 원천마을 들판을 바라보며 지은 '광야'를 가슴 절절이 느낄 수 있다. 거리는 꽤 먼 편이다. 숲길을 걷다가 아스팔트 포장길(특히 이육사 문학관에서 단천교까지)도 만난다. 하지만 차량 통행이 많지 않아 걷기에 불편하지는 않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청량산 조망대에서 강길을 따라 청량산으로 이어지는 '퇴계 예던길'을 내딛는 것도 좋다. 호젓한 오솔길의 느낌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다.

##해발 1천m 고지대에 둘레 7.4㎞ 산성이…

◆성주 독용산성길

겨울철 눈만 내리지 않으면 산성 아래쪽 주차장까지 차로 갈 수 있다. 지난 동행길에는 차가 오르지 못해 온전히 걸어서 갔다. 영남지역 산성 중 최대 규모인 독용산성은 둘레만 7.4㎞에 이른다. 게다가 해발 1천m에 육박하는 고지대에 있는 성을 만나기는 쉽잖다. 흔히 산성 입구에서 되돌아오지만 정작 알짜배기는 성내 오솔길에 있다. 샘터부터 산성 남문이 있던 자리, 산성을 지키던 승군(僧軍)이 머물렀다는 안국사 터까지 이르는 구간은 아기자기한 숲길로 이어진다. 봄부터 나물 캐러 많이 찾는다.

##빽빽이 들어선 자작나무 숲에 절로 탄성

◆김천 수도산 모티길

15㎞에 이르는 긴 구간이다. 김천 증산면 수도리에서 황점리로 이어지는 숲길. 수도리에서 숲길까지 다소 오르막이지만 나머지 구간은 평탄한 편이다. 임도를 개척한 숲길이다 보니 주변에 나무 그늘이 별로 없다. 한여름보다는 봄, 가을이 산행에 좋다. 눈만 내리지 않았다면 겨울 산행에도 적합하다. 아직 휴게소나 샘터가 없어서 먹고 마실 거리를 챙겨가야 한다.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이 빼곡히 들어선 자작나무 숲을 보면 누구나 탄성을 지른다. 수령 80년을 헤아리는 수백여 그루의 낙엽송 숲도 만날 수 있다. 한때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낙엽송 군락지였다. 곳곳에 산림청이 만든 조림지가 있어서 살아있는 숲 교육에도 걸맞다.

글'사진=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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