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은 참 묘한 것'이란 점을 여행하며 실감하고 있다. 서로 생판 모르는 이역만리 타국에서 왔지만 한날 한시 한곳에 모였다는 이유만으로 친구가 된다. 각자 지나온 여행지 정보를 나누고, 경험담을 교환하다 보면 어느새 절친한 사이가 된다. 그리고 작별할 땐 서로 아쉬움만 가득하다.
◆바르칼라에서의 특별한 인연
사람마다 여행 방식은 조금씩 다르다. 우리의 경우 주로 한 곳에 지긋이 눌러앉았다 떠나다 보니 아무래도 여행객들과 친구가 될 기회가 많았다. 그러나 바르칼라(Varkala)에서 만난 친구들은 좀 특별했다. 영국 출신으로 호주를 주무대로 살고 있는 스카이다이버 마이크, 남인도에서 장기간 머물며 요가를 배우고 있는 미국인 발뎃, 인도를 시작으로 아시아를 유랑 중인 네덜란드인 아터. 늦게 합류한 발뎃의 친구인 한국계 미국인 에이미, 그리고 마이크의 호주인 여자친구 페넬로프 등.
짧은 인연 평생의 추억
국적만큼이나 정말 다양한 배경의 인물군인데, 어떻게 그런 식으로 죽이 잘 맞아 금세 '절친'이 됐는지 지금 생각해도 의아스럽다. 아무래도 해변 휴양지에서 느긋한 마음으로 만났고, 같이 시간을 보내며 여흥을 함께했기 때문인 것 같다. 늦은 밤 술 한잔하기 위해 여행객들이 집결하는 식당 겸 바 '칠 아웃'(Chill Out)에서 시작이 됐으니 오히려 당연하다고 해야 할까?
단번에 의기투합한 우리는 이후 알레피(Alleppey)에서 수로 유람을 마지막으로 훗날을 기약하며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짧게는 2주, 길게는 3주의 시간이지만 평생 연을 함께하고 싶은 그런 추억을 공유하는 사이가 됐다.
◆남인도에서의 다양한 만남
재밌는 인연도 있다. 제욱이라는 한국 남자로 고향이 대구인 청년이다. 맥간에 있을 때 리아가 몸이 좋지 않아 호텔에 하룻밤 묵은 날 밤. 창 밖에서 한국인 여행자 대여섯 명의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다. 대략의 내용이 아일랜드에 있는 여자친구와 사귀게 된 경위였다. 바로 그날 몰래 들었던 사연의 주인공이다.
인도를 떠났어야 할 인물을 남인도 바르칼라의 바에서 우연히 보게 된 우리. 너무 희한한 상황이다 보니 바로 이 친구와 함께 한참 얘기를 나눴다. 어안이 벙벙해 보이기에 자초지종을 설명해주니 그제야 궁금증이 풀리는 표정이었다. 아일랜드 여행에서 최근 돌아왔다는 그는 "마날리(Manali)에서 만난 인도 친구들한테 인사 나누러 왔다가 바르칼라로 옮겼다고 해서 왔다"고 답을 해주었다.
토니라는 이름의 나이 지긋한 영국인도 기억에 남는다. 스웨덴에서 보석 판매를 하고 있다는데, 1970년대부터 인도를 다녔다고 하니 정통파 인도 여행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이를 대충 짐작하면 60대 전후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세계를 다니며 자신의 삶을 즐기는 모습이 새로웠다. 경계를 넘나드는 영국식 유머 감각도 일품이었다.
맘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 같은 우메시도 빼놓을 수 없다. 건강 주스와 팬케이크, 샌드위치 전문점 '주스 색'(the Juice Shack) 주인이다. 손님들을 편안하게 대해 주고 여행 중 소소한 문제들을 풀어주는 해결사이기도 하다. 덩치도 큰 편이라 아주 듬직했는데, '여동생 같다'는 리아에게 작별 선물까지 챙겨 주는 자상함을 지녔다.
해피엔딩으로 다시 길 떠나
다수의 이스라엘인을 만난 것도 운이라면 운이겠다.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인근 아랍 국가와의 긴장 관계와 병역 상황 등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여기에 따르면 집 뒷마당에 포탄이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었다. 젊은이들은 이런 긴장 상태와 병역에 따른 스트레스를 해외 여행과 마리화나 흡연으로 푼다는 얘기도 들었다. 특히 인도를 많이 찾는데, 이들의 주요 방문지를 일러 '후머스 트레일'(Hummus Trail'후머스는 이스라엘이나 중동 지방에서 즐겨먹는 소스의 일종)이라고 부른다는 우스갯소리도 확인할 수 있었다.
◆코치에서의 마지막 시간
인도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였던 코치(Kochi)에서는 카말과 재회했다. 델리에서 신세를 진 가우탐이라는 카우치 서퍼(Couch Surfer'11월 24일자 10회분 기사 참조)를 통해 알게 된 코치 주민이다.
말투나 행동거지 모두 진심이 우러나오는 남인도인으로, 만날 때마다 성심성의를 다해 우리를 대해 주었다. 카말과의 재회가 더욱 특별했던 이유는 인도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긍정적으로 기억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인도 출국 바로 이틀 전에 발생한 사건 때문이다. 이날 오전 2시 30분쯤 잠을 자는데 소란스런 분위기에 잠을 깼다. 리아는 이미 잠이 깼는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남자가 흥분해서는 뭐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여자친구가 다쳤으니 구급차를 빨리 불러 달라'는 것이었는데 그 주변 상황이 평범치 않았다. 여자친구의 얼굴, 특히 눈두덩이가 퉁퉁 부어 있는데다 피까지 흐르고 있었다.
말끝마다 욕지거리를 해대는 남자가 혹시나 해코지를 할까 두려워 진정시키며 모두 방안에 머무는 가운데 시간은 어느새 30분이 훌쩍 지났다. 그제야 경찰이 도착을 했는데, 숙소 직원과 얘기만 하고는 계속 우물쭈물한다. 한참이 지나도 환자를 이송할 생각을 안 한다. 답답한 마음에 리아가 직접 나서 남자와 함께 여자를 경찰차 안으로 옮기고, 그러고도 10분 정도 지나자 겨우 차가 떠나면서 상황은 정리가 됐다.
인도 경찰의 무능함과 환자 이송체계의 후진성이 인도의 최후 기억으로 남을 뻔했는데, 카말의 호의와 환대가 이를 대신했으니 개인적으로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결국 남는 것은 사람 아닌가! 이렇게 우여곡절 많았던 인도 여정은 조금은 기묘한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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