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새벽

일 년에 한 번씩은 꼭 정기 검진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하지만 올해도 역시 몇 년 만에 하게 된 거 같다. 시간을 내기가 어려운 것도 아닌데 모든 현실에서 후순위로 밀려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사실 제일 중요한 일임에도 말이다.

오늘 아침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기 위해 병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시동을 걸고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오자 오랜만에 느끼는 새벽의 느낌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나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푸르스름한 새벽 빛이 새벽 출근길 차량들의 헤드라이트와 어우러져 신비스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이른 아침은 모든 사람들이 자연스레 초심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라지만 이렇게까지 겸허해질 수가 없었다. 이 새벽 마음속을 찍는 카메라가 있으면 찍어 저장해두고 싶다. 놓치고 싶지 않은 이 느낌, 이 마음가짐, 이 새벽의 풍경을 말이다.

차 안에서는 노라 존스의 멋진 보사노바 재즈가 흐르고 아무런 제약도 없는 나만의 공간에서 느끼는 이 행복감과 오늘에 대한 기대감이 짧은 십 분이었지만 오늘 나의 하루를 여는 데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속도 시원하게 비운 탓인지 몸도 마음도 날아갈 듯 가벼웠다.

나는 유독 새벽을 즐기고 좋아하는 거 같다. 이렇게 글을 쓸 때도 꼭 새벽이 되어야만 술술 잘 풀리고 지난번 파리 출장에서도 현지에서 구입한 실물 같은 닭 조각 모형을 호텔 창 한쪽에 두고 동이 트는 새벽을 즐기며 행복해했었던 기억이 난다. 함께한 동료 디자이너의 마음까지 행복하게 만들면서 뿌듯해했었다. 확실히 새벽은 하루의 다른 시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어떤 신비로움과 풍요로움이 있다.

특히 새벽은 하루를 시작하기에 앞서 그날의 일과 나의 목표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할 시간을 주고, 나의 삶의 방향을 잡아준다. 또한, 새벽은 그날을 결정짓는 시작이지 않은가. 이 새벽이 주는 고요하고 청정한 느낌과 아름다움에 이렇게나 행복해질 수 있는데 왜 매일 이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살고 있나 싶다. 새벽은 매일 어김없이 와 주는데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조찬모임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싶다. 오늘도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하게 해주는 새벽에 감사한다.

김건이<패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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