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처럼 키운 소들을 생다지로 파묻은 농민의 아픔은 눈물 이상이다. 애지중지 기르던 소를 언 땅에 묻고 텅 빈 외양간에 남은 사료를 바라보노라면 일손이 잡히지 않고 입맛도 없고 잠을 이루지 못한다. 겨우내 겪어야 할 피해 농민들의 구제역 트라우마(충격적인 경험 뒤에 오는 정신적 후유증)다.
방역과 매몰 작업에 동원된 공무원들도 육체적인 피로와 정신적인 충격에 시달리고 있다. 닭 모가지 한 번 비틀어 본 적이 없는 책상물림들이 참혹한 매몰 현장에서 끼니를 때우고 새우잠을 자면서 별난 추위와 생경한 악역을 감내하고 있다.
하루에 수십 마리에서 수백 마리의 가축을 강제로 죽여서 묻는 일이 아닌가. 지켜보는 농민이나 작업을 담당하는 공무원과 봉사자들 모두에게 충격이고 상처인 것이다. 피로와 식욕 부진과 구토와 불면에 시달린다. 눈만 감으면 생죽음을 앞둔 소들의 굵은 눈망울이 어른거려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매몰 작업을 위해 동원된 공무원들의 구제역 트라우마다.
구제역이 발생한 안동 지역은 공황 상태나 다름없다. 10만 마리가 넘는 돼지와 소를 땅속에 묻고난 황폐함에다 지역 경제마저 휘청거리고 있다. 식당가에 손님이 뚝 끊겼다. 해마다 이맘때면 연말 분위기를 타고 북적대던 한우 불고기촌과 갈비 골목이 소금을 뿌린 듯 썰렁하다.
하회마을을 비롯한 명소의 관광객도 급격히 줄었다. 지역 농특산물의 판매도 눈에 띄게 위축됐다. 구제역과 아무 관련이 없는데도 안동 이름이 붙었다는 이유로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 것이다. 청정 지역 안동의 이미지가 큰 손상을 입었다.
민심도 어수선해졌다. 구제역 양성과 음성 판정이 엇갈린 이웃 마을 주민들 간에는 알게 모르게 불신과 반목이 생겨났다. 안동 사람들은 마음 놓고 바깥 나들이하기도 어렵다. 사람들마저 무슨 바이러스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사태가 종식된다고 해도 안동의 구제역 트라우마는 쉬 가시지 않을 전망이다.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이 뜻밖의 시련에 봉착했다. 안동을 위해 국민이 나서야 한다. 만신창이가 된 축산을 재건하고 구제역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아낌없는 위로와 격려를 보내야 한다. 일부러라도 안동 농특산물을 더 소비해 줘야 한다.
조향래 북부본부장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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