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생활수급자 중 부양 의무자가 있을 경우 형편과 관계없이 수급대상에서 탈락되는 빈곤층이 급증하고 있지만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이 미뤄져 빈곤층과 시민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9년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자 가운데 부적합 탈락자는 모두 9만7천474명으로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린 탈락자(3만1천856명)가 전체 탈락자의 32.6%를 차지하고 있다.
소득과 재산이 수급자 기준에 적합하더라도 부양 의무자가 있으면 수급자 선정에서 탈락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지만 국회는 부양 의무자 기준 폐지를 골자로 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을 상정조차 못하고 있다.
◆허점투성이 부양의무자 기준
지체장애 2급인 A(57·대구 달서구 상인동) 씨는 하루하루가 벅차다. 위암에 걸린 부인과 단둘이 사는 A씨의 소득과 재산은 기초생활수급자 기준에 속하지만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경북 구미에서 일하는 아들 B(28) 씨의 소득 때문이었다. 지난달부터 아들이 220여만원(세금 포함)을 벌면서 차상위계층 탈락 통보를 받았다.
이는 1인가구 기준 부양 의무자(자녀와 며느리, 사위) 최소 소득인 170만원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아들 급여가 오를수록 A씨 부부는 고통스럽다. A씨는 "아들이 집에 발길을 끊은 지 5년이 다 돼 가는데 아들 벌이 때문에 수급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억울하다.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병원비와 생활비를 충당해 빚만 늘어나고 있다"고 한숨지었다.
C(57·여) 씨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1남 2녀 중 아들은 신용불량자이고 첫째딸과는 10년째 연락을 끊고 산다. 둘째딸도 사위가 벌어오는 월 100만원이 수입의 전부다. 이 때문에 C씨는 세 자녀에게 의지할 처지가 못 된다. 문제는 미혼인 첫째딸의 소득이었다. 얼굴도 못 보고 지내는 딸의 소득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는 데 걸림돌이 된 것이다. C씨는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 엄마가 어떻게 딸에게 용돈을 받고 살겠느냐"며 "가진 것이 없어도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고 눈물지었다.
◆개정안 표류, 정부 정책은 역행
지난 6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을 발의한 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실은 "현실에 맞지 않는 부양의무자 기준이 수급자 사각지대를 만들어 내고 있다. 수급자에서 탈락한 가구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해보면 부양의무자 기준 탓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다"며 "부양의무자 기준에 1촌 직계혈족(자녀)만 포함시키고, 부양의무자가 있다고 수급권자의 신청 포기를 유도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달 초 국회 파행 탓에 법 개정안은 상정조차 되지 못했고 정부 정책도 현실에 역행하고 있다.
내년 예산에서 수급자 생계 급여는 올해에 비해 32억2천300만원이 삭감됐다. 올해 2조4천491억9천200만원이었던 생계 급여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2011년도 예산안'에서 2조4천459억6천900만원이 됐다. "내년부터 경기가 회복되면 수급자가 줄어들 것"이라는 정부의 예측 때문이었다.
시민단체들은 경기 흐름에 따라 수급비 관련 예산을 축소하는 '고무줄' 예산을 비판하면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구 인권운동연대 서창호 상임 활동가는 "부양의무자 기준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생계 급여를 축소하는 정부는 현실과 괴리된 정책을 펴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리복지시민연합 은재식 사무처장은 "시민단체들은 법안을 만들 때부터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고 자식을 제외한 개인의 소득 생활을 기준으로 수급비를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