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흙에 살리라 마음먹었다. 그 마음 때문에 1980년에 벽돌공장을 세웠다. 서울에서 대학 공부를 마치고 직장생활을 했기에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어릴 적 만지고 놀던 동구밖 흙 냄새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아직도 비가 오는 날이면 동네 형, 동생들과 모여 흙을 막아 댐 놀이도 하고 흙장난을 치던 때가 눈에 선합니다."
대구 동구의 시골마을에서 자랐다는 ㈜선일로에스 최병환 대표는 "흙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이 자신을 평생 흙을 빚는 인생으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그는 황토를 소재로 한 점토벽돌 제조공장을 설립한 이래 30년간 친환경 웰빙건축자재를 개발, 생산하는 데 앞장서 왔다.
흙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일이다. 열정은 이내 성과로 빚어졌다. 연구개발과 기술혁신을 통한 특허 등 지적재산권만 모두 20종을 획득했다. 또 생산성과 품질향상에 노력한 결과 조달청 선정 6년 연속 '우수제품',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 선정 '우수재활용제품'으로 지정받았다.
특히 국내 최초로 폐고령토를 이용한 점토바닥벽돌 제조방법은 붉은색 일색의 벽돌에 색의 혁명을 불러왔다. 아이보리·핑크색 등 다양한 색상과 무늬를 갖춘 보도·차도용 점토벽돌을 생산해 수천억원대의 수입대체효과와 수요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
흙과 인연은 은퇴 후에도 이어갈 예정이다. 이미 머물 집까지 마련해 놨다. 황토로 지은 집이다. 최 대표는 그곳에서 도자기를 빚으며 남은 생을 보낼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어차피 흙에서 왔다 흙으로 돌아가는 게 인생인데 흙처럼 욕심 없이 살다 가는 게 생활신조입니다."
◆고정관념을 깨라
'왜 벽돌은 항상 붉어야만 하나. 벽돌에 색깔을 입힐 순 없을까?"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든 의문점이었다. 이때부터 차별화된 벽돌을 만들기 위한 고민이 시작됐다. 5년의 연구 끝에 고령토로 빚은 하얀색 벽돌을 착안했다. 고령토 역시 황토처럼 구우면 본래 색(하얀색)이 남기 때문이다.
전국 고령토 산지를 찾아 다녔다. 그러나 벽에 부딪혔다. 고령토가 너무 비싸 도저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포기하려든 무렵, 폐고령토를 떠올렸다. 폐고령토도 고유의 색깔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1988년 드디어 폐고령토를 이용한 하얀 벽돌을 찍어낼 수 있었다. 인공 색소를 하나도 가미하지 않고 친환경적인 벽돌을 최초로 생산해 낸 것.
고령토는 황토보다 점력이 약한 탓에 습도와 온도 조절이 관건이었다. 이때부터 주택과 보도블록 등 미적 부분을 강조한 다양한 건축 분야에 응용이 가능해졌다. '해냈다'는 기쁨도 잠시. 기존 벽돌 시장에는 좀체 먹혀들지 않았다. '벽돌은 붉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질이나 가격 면에서 고령토 벽돌이 전혀 뒤지지 않는데 업계의 외면이 심했어요." 1998년 경기도 일산 신도시 개발 붐이 한창일 때 단독주택 20여 채에 공짜로 고령토 벽돌을 대 줬다. 홍보차원이었지만 중소기업에서는 부담스런 물량이었다. 그러나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써보니 좋더라. 어디서 구했느냐? 예쁘다"라는 입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이후 사업은 탄탄대로였지만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1등 업체란 부담감이 항상 어깨를 짓눌렀다. 선도기업은 기술, 투자비 등이 많이 들지만 후발 주자들은 제품만 응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수년간 조달청 우수 제품으로 선정될 정도로 우수제품과 새로운 벽돌을 생산해 내고 있지만 한국 기업 풍토상 선도기업을 덜 인정해 주는 분위기가 조금 아쉽습니다."
◆큰 회사보다는 좋은 회사로…
"벽돌경영." 최 대표의 경영 신조다. 벽돌처럼 작지만 단단한 회사로 이끈다는 것이다. 이제껏 이런 일념으로 경영해 왔고 현재 아들도 벽돌경영 수업을 착실히 밟고 있다.
"양적 부피만 키운다고 좋은 회사가 아닙니다. 내실이 튼튼해야죠." 최 대표의 이런 철학은 노사관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27년간이나 무분규 사업장을 기록 중이다. 종업원도, 대표도 모두가 선일로에스란 이름으로 똘똘 뭉쳐 있다. 그는 "회사 초창기 고령토 벽돌을 개발하기 위해 한 동료와 함께 전국을 돌아다녔다"며 "그 동료에게 부끄럽지 않게 회사를 만들어준 직원들이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그 동료는 지금 옆에 없다. 20여 년 전 고령토를 구하려고 밤늦게 출장을 다녀오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등졌다. "항상 그 친구에게 마음의 빚이 있어요. 또 좋은 회사로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도 생겼어요."
늘 정직하라고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정직하면 총명해지고 추진력이 생긴다는 것. 정직은 통했다. 품질을 속이지 않고 기술력 향상을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녔기 때문에 지역의 25개 벽돌업체가 어려움을 겪을 때 선일로에스만은 꿋꿋이 버텨왔다. "규모에 연연하지 않고 정직이 통하는 회사가 바로 좋은 회사입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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