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자선단체 비리 한파, 우리동네 불우이웃부터 얼어붙는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운영 비리 사건이 불거진 이후 온정의 손길이 얼어붙고 있다. 사랑의연탄나눔운동 대구경북지부에 따르면 개인의 연탄 기부 금액은 지난해에 비해 10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운영 비리 사건이 불거진 이후 온정의 손길이 얼어붙고 있다. 사랑의연탄나눔운동 대구경북지부에 따르면 개인의 연탄 기부 금액은 지난해에 비해 10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기부가 줄어들 때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쪽은 기부단체도, 기부자도 아닌 수혜자다. 냉철하게 사태를 바라보고 기부를 하는 문화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기부가 줄어들 때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쪽은 기부단체도, 기부자도 아닌 수혜자다. 냉철하게 사태를 바라보고 기부를 하는 문화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운영 비리 파문의 후폭풍이 거세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면서 따뜻한 관심과 나눔의 손길은 더욱 절실해지고 있지만 비리 사실이 불거진 이후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기부금 감소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냉각된 기부 문화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복지시설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어 더욱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온정의 손길이 얼어붙으면서 가장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는 이들은 바로 불우이웃들이다. 기부 감소의 여파가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가되기 때문이다. 냉철하게 사태를 바라보고 기부를 하는 문화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이유다.

◆우려가 현실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서 사랑의 온도계가 얼어붙고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지회의 경우 32억원을 목표로 이달 1일부터 '희망 2011 나눔캠페인'을 시작했지만 18일까지 모금된 금액은 목표액의 12%인 3억9천만원에 불과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5억5천만원이 모금된 것에 비해 1억6천만원이 줄어든 것.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경북지회도 사정은 비슷하다. 18일까지 '희망 2011 나눔캠페인'을 통해 모금된 금액은 15억5천600만원으로 목표 금액 90억원의 17%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 모금액 24억원에 비해서도 크게 모자라는 수치다. 경북지회는 구제역 여파까지 겹쳐 현재 추세라면 목표 달성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여파는 다른 자선단체에도 미치고 있다. 이달 1일 KBS와 공동으로 모금사업을 시작한 대한적십자사는 방송 모금을 통해 200억원의 기금을 조성할 계획이지만 현재로서는 목표 달성이 불투명한 실정이다. 대한적십자사 경북지사에 따르면 이달 18일까지 모금한 금액은 3천여만원이 전부다. 구제역이라는 복병까지 만난 경북지사는 내년 1월 시작되는 일반모금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구세군 대구경북본영은 올해 모금 목표액을 2억3천만원으로 잡았으나 지난해 수준인 2억300만원에도 못 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9곳에 자선냄비를 설치했지만 20일 현재 지난해 모금액을 넘어선 곳은 한 곳도 없다.

사랑의연탄나눔운동 대구경북지부의 경우 지난해 2억2천여만원을 모금해 연탄 30만 장을 저소득 계층에 전달했지만 올해 모금액은 1억5천여만원에 그치고 있다. 특히 개인의 연탄 기부 금액은 지난해에 비해 10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재흥 사랑의연탄나눔운동 대구경북지부장은 "연탄나눔운동은 12월에 가장 활발히 펼쳐진다. 하지만 올해는 한산해 저소득층의 겨울나기가 힘이 들 것 같다"고 분석했다.

◆피해는 불우이웃에게

일찍 남편을 여의고 혼자 사는 박순금(가명·80) 씨는 다가오는 설을 어떻게 보낼지 막막하기만 하다. 설이 되어도 찾아오는 사람도, 찾아갈 곳도 없는 박 씨에게 따뜻한 떡국 한 그릇은 몸과 마음에 온기를 전해주는 큰 위안거리였다. 하지만 올 설에는 떡국 한 그릇 먹기도 힘이 들 것 같다. 명절을 앞두고 답지하던 온정의 손길이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대구 중구에 있는 한 노숙자쉼터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부터 기금을 받아 노후된 시설을 수리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시설을 수리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게 됐다. 또 쪽방에 거주하는 김모(46) 씨는 지난겨울에는 연탄을 300장 지원받아 겨울 추위를 녹였지만 올겨울에는 연탄을 절반 정도밖에 받지 못했다. 기나긴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연탄을 최대한 아껴 써야 하기 때문에 어느 해보다 추운 겨울을 보내게 됐다.

얼어붙은 온정의 손길이 되살아나지 않으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가정한 것이다. 하지만 가상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실제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지회의 경우 내년 대구지역 사회복지시설 102곳에 지원하기로 한 금액은 11억여원이다. 당장 1월에 사회복지시설 102곳에 5억~6원을 지원해 주어야 한다. 또 저소득 가정의 생계비와 의료비 지원 사업에 3억원, 저소측 계층 명절지원사업에 3억4천만원이 책정돼 있다. 이런 사업들이 차질 없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나눔캠페인 기간 동안 목표 금액의 80% 이상을 모금해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비관적이다. 이정우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지회 기획관리팀장은 "목표액을 달성하기가 현재로서는 매우 어려울 것 같다. 12월까지 모금 추세를 지켜본 뒤 1월 사업 재조정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모금이 되지 않으면 사업의 축소 또는 취소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경북지회는 올해 다문화가족 지원사업, 찾아가는 이동복지사업 등 40개의 기획사업을 펼쳤다. 하지만 기부금 모금이 여의치 않으면 기획 사업의 축소가 불가피한 실정이다. 최병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경북지회 모금사업팀장은 "경북지회의 경우 12월부터 두 달 동안 진행되는 나눔캠페인 기간에 연중 모금액의 70% 정도가 모금된다. 현재 추세라면 나눔캠페인 목표는 물론 연중 목표액 달성도 미지수다. 모금이 되지 않으면 각종 사업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김상수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 모금팀 대리는 "예년과 달리 성금이 기대만큼 모이지 않는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은 많은데 모금이 되지 않으니 안타깝다. 기부금이 감소하면 사업 축소를 해야 하고 결과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이 큰 영향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온정은 계속되어야 한다

비록 일부에서 운영 비리가 불거졌지만 그동안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사회의 빛과 소금 같은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에 따라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수행해 온 순기능 역할마저 폄훼되는 현실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뼈를 깎는 자정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일부 비리가 전체의 비리로 확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

특히 우리나라는 영국의 자선구호 재단 CAF가 세계 153개국을 대상으로 평가한 기부지수에서 81위를 기록할 만큼 기부문화가 부실하다. 기부문화 싹이 채 자라기도 전에 사라지는 게 아니냐는 걱정의 목소리가 높다.

은재식 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이번 기회가 기부 문화의 본질을 되돌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자선단체는 더욱 엄격한 도덕성을 함양해야 하고 시민들과 기업들은 진정한 기부 문화가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단순히 돈만 내는 것이 기부가 아니다. 기부는 나눔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고귀한 행위다. 하나의 사건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진정한 기부가 아니다. 기부가 줄어들 때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쪽은 기부단체도, 기부자도 아닌 수혜자다. 온정의 손길이 줄어들면 지원받아야 하는 이웃들이 복지 사각지대에서 고통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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