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대구시 동구 신암동 동부초등학교 인근에 산타 할아버지 일행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조그만 슈퍼마켓으로 생계를 꾸리는 김지훈(가명·10) 군 가족을 찾았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사는 지훈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가게 앞에서 일행과 마주했다. 사슴뿔 머리띠나 산타 모자를 쓴 10여 명은 크리스마스 캐럴을 신나게 부르며 춤을 췄고 막대 풍선을 불어 왕관 모양을 만든 뒤 지훈이 머리에 씌워줬다.
흰 수염을 펄럭이던 산타 할아버지는 촛불을 켠 케이크와 정성껏 포장한 선물을 건네며 한마디 했다. "선물을 줄 테니 지훈이 앞으로 반찬투정 안 할 거지?" 갑자기 닥친 일행에 당황하던 지훈이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훈이 할머니가 대신 나섰다. "추운 날에 이처럼 찾아와줘서 정말 고맙소. 손자 녀석에게 좋은 추억이 될 게야."
낮 기온이 영하권을 맴도는 강추위 속에서도 크리스마스 이브에 진행된 '2010 사랑의 몰래산타 대작전'은 순조롭게 끝났다. 이 행사는 시민단체 '함께하는 대구청년회'가 3년째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 산타 할아버지와 일행으로 분장한 이들은 저소득 계층 아이들에게 사랑을 나눠주자는 취지에 공감한 청년 자원봉사자들이었다.
이날 오후 3시 '사랑의 몰래산타'가 되길 자원한 젊은이 350여 명은 동구청 앞 광장에 모여 발대식을 가진 뒤 아양교까지 거리행진을 벌였다. 추운 날씨에 너나 할 것 없이 코가 발갛게 물들어 '루돌프 사슴코'가 됐지만 아랑곳않고 길을 오가는 시민들에게 밝은 목소리로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쳤다.
포장마차를 열고 있던 한 아주머니는 "젊은 사람들이 참 기특하다"며 반갑게 손을 흔들기도 했다.
이미 한 차례 선물을 전하고 온 위희운(26·계명대 사회복지학과 4년) 씨는 "처음엔 산타 복장이 민망하기도 했지만 영어동화책을 받아든 아이가 좋아하는 걸 보니 용기가 생겼다"며 "조그만 사랑이라도 베푸는 일이 보람차다는 걸 새삼 느꼈다"고 했다.
이들은 케이크와 미리 준비해뒀던 빨간 선물 보따리를 받아든 뒤 조를 나눠 흩어졌다. 동구청이 소개한 조손가정 등 저소득 계층 110여 가구를 미리 찾아 아이들 몰래 무슨 선물을 받고 싶은지 등을 미리 확인해둔 터라 산타 할아버지 일행을 맞이한 아이들의 기쁨은 더욱 컸다.
이웃 사이라는 강보라(24·여), 양지애(25·여·이상 계명대) 씨는 "너무 추워 정신이 하나도 없지만 기다릴 아이들을 생각하면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며 "취업 준비에 매달리다 보면 다른 곳에 신경을 쓸 틈이 없는데 오늘 일은 아이들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오래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경산 하양 일대에서도 자원봉사자 1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동시에 진행돼 '사랑'을 선물했다. 행사를 준비한 '사랑의 몰래산타' 대구운동본부 강종환 산타 대장은 "청년들이 취업난으로 걱정 대상이 됐으나 아직 열정과 패기를 잃지 않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 미래도 희망적"이라며 "연말 모든 이들이 조금씩이나마 주변을 돌아보고 따뜻한 사랑을 나누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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