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행복을 요리하는 의사] 한해의 끝

'끝이 좋으면 다 좋다'라고 셰익스피어는 말했다. 호스피스 의사는 인생의 끝을 같이한다. 여러 가지 사연을 간직한 환자가 입원을 하고, 그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서 호스피스팀은 최선을 다한다. 지상에서 묵어가는 마지막 여관인 '평온관'에서는 어떻게 웰다잉(well-dying)을 도와주고 있을까?

나는 환자의 가계도를 작성함으로써 호스피스 상담을 시작한다. 남자는 네모, 여자는 동그라미로 그려지는 나뭇가지 모양의 가계도는 호스피스 활동의 열쇠다. 유전적 질환에 대한 의료 정보는 물론이고, 환자의 인생을 한 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온 폐암환자 김순희(가명·60) 씨와 3년 동안 남편이 지극정성으로 간호해온 근육종 환자 이정자(가명·49) 씨는 '호스피스 돌봄의 목표'가 다를 수밖에 없다. 김순희 씨는 평생 공무원 생활을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숨이 차서 언니와 함께 대학병원에 가보니, 말기 폐암이었다. 아프기 전에도 내성적인 그녀와 소통할 수 있는 대상은 마음 넉넉한 언니뿐 이었다. 똑똑했지만 예민해서 늘 혼자였던 동생을 안타까웠던 김순희 씨의 언니는 그녀의 웰다잉을 위한 핵심이었다.

그녀의 짧게 남은 삶과 물 한 모금도 마실 수 없는 병의 상태에 대한 상세한 설명으로 언니는 평소와는 다른 따뜻한 말을 그녀에게 속삭였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용서와 사랑, 감사, 축복의 말은 그 사람이 떠난 뒤에는 해결할 수 없는 큰 선물을 남기기도 한다. 언니를 통해서 그리고 호스피스팀을 통해서, 김순희 씨는 세상이 따뜻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아오키 신몬은 그의 저서 '납관부(納棺夫) 일기'에서 '깨달음이라는 것은 여하한 경우에도 태연하게 죽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일이었다'라고 했다. 말기 암환자로 끝까지 흔들림 없이 생명의 건전지가 다할 때까지 살아간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이정자 씨는 나에게 깨달음을 가르쳐주는 훌륭한 스승이자, 나의 호스피스 환자였다. 좋은 환자 옆에는 좋은 보호자가 있기 마련이다. 아프기 시작한 3년 전부터 그림자처럼 따라 다닌 남편을 돌보아 주는 것이 이정자 씨의 아름다운 마무리의 핵심이었다.

통증과 붓는 증상이 조절되자, 그녀는 아름다운 미소로 하루 종일 지내고 있었다. "몸은 비록 나의 환자이지만, 우리 모두는 그녀의 깨달음을 배워야한다"고 그녀의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그는 벌써 알고 있었다.

그렇게 의젓한 부인이 애처로와서 마음이 더 아프다고 했다. 부인이 아프고부터, 그녀가 아닌 그가 우울증약을 먹고 있었다. 이렇듯 암환자의 가족은 몸이 아닌 마음으로 암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사랑이 넘치는 따뜻한 가정이 있는 환자는 호스피스팀이 같이 걱정해주는 것만으로도 죽음이 다가옴이 불행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간다. 삶을 마무리하는 평온관에서의 생활은 죽음이 갈라놓을 사람들과 좋은 추억을 남기는 일이다. 아름다운 마무리, 호스피스활동은 남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작업이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 센터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