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또 다른 시작

어젯밤에 내린 눈 탓에 우리 동네 지붕 위가 온통 하얗다. 천사같이 잠든 아이의 이층 침대 위에서 바라본 아침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건 반짝이는 하얀 눈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제 저녁 시키지도 않았는데 일곱 살 막내가 설거지를 한다. 첫째에서 둘째로 둘째에서 셋째로 엄마를 위한 사랑스런 아이들의 마음을 난 알고 있다. 난 조심스럽게 살짝 온수 버튼을 눌렀다. 지극히 엄마의 마음으로….

아직은 새벽에 아이들 때문에 이층 침대 아래 위층을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신세이긴 하지만 아침에 눈뜨면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여서 더욱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는 게 아닌가 싶다. 이렇게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주는 눈까지 온 날엔 더욱더 강하게 말이다.

나는 매주 일요일 시간을 내서 아이들과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으로 갈 때가 많다. 시간이 많지 않을 땐 한 시간만 다녀와도 아이들은 네다섯 권씩은 족히 보고 오니 짧은 시간 안에 얼마나 뿌듯해지는지 모른다. 부모가 어린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즐겨 다니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내게도 책을 읽을 시간이 생긴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다가오는 새해엔 우리집에도 작은 도서관을 만들기로 남편과 합의했다. TV를 없애고 거실을 서재화시키는 가정이 늘어나는 걸 보면서 부러워만 했었지 실천은 하지 못했었기에 얼마 전 이런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하듯이 자연스레 고장 나 준 TV가 고마웠다.

새해엔 아이들에게 고장 난 TV 덕에 새로운 선물을 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집에 도서관을 만들자 하니 아이들이 벌써 자기 책 정리에 고민이다. 그러다가 눈에 띄는 책을 꺼내 다시 읽고 있는 모습이 사랑스럽기도 하고.

사실 요즘은 지난날에 대한 아쉬움과 새롭게 다가오는 새해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으로 슬슬 마음이 분주해지는 때이긴 하다. 밖은 쌀쌀하기만 하지만 따뜻하고 편안하게 꾸며진 공간에서 아이들과 함께 책을 고르고 함께 책을 읽고 서로를 마주할 시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새해에도 나는 우리 아이들이 따뜻한 가슴을 안고 지내길 바란다.

1년 365일이란 숫자 때문에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 시작과 끝을 주어 지난 시간을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는 시간과 다시 주어진 새로운 시간에 대한 계획을 할 수 있음에 새삼 감사해지는 날이다.

나는 새해에도 나의 아이들과 뜨겁게 뜨겁게 사랑하고 싶다.

김건이<패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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