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경 옮김/에버리치홀딩스 펴냄
'미술 시간에 가르쳐주지 않는' 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예술가들의 사생활'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남부끄러운, 혹은 예술 작품과 관련해서 드러낼 가치가 별로 없는 이야기들이다. 사생활은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에 꽤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지만 전혀 미치지 않은 경우도 많다.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대표작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는 아내 조세핀 니비슨과 불화했다. 키 198㎝의 호퍼가 152㎝의 작은 여자와 싸우는 광경은 낯설지 않았다. 호퍼는 아내가 전통적인 주부이기를 바랐지만, 아내는 별 재주도 없는 그림(한심해 보일 정도로 볼품없는)을 끝없이 그려댔고, 호퍼는 그런 아내를 대놓고 깎아내렸다. 불화로 가득했던 생활을 견뎌야 했던 아내 조는 자신을 '사지가 잘린 사람' '반쪽이 잘려나가 피 흘리는 사람'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조는 수다쟁이였고, 호퍼는 지나칠 정도로 과묵했다. 조는 그런 남편에게 말을 걸지 않음으로써 복수해보려고 애썼지만, 그가 그런 대우를 처벌로 인식하지 않고 오히려 안도하게 될까봐 두려워했다.
조는 남편 호퍼의 과묵한 성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때때로 그 사람과 대화하는 건 벽에 돌멩이를 던지는 것과 같아요. 차이가 있다면, 그 돌멩이(남편)는 바닥에 떨어질 때조차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죠."
아내 조는 운전이 서툴렀다. 특히 주차를 할 때는 여기저기 쿵쿵 들이받기 일쑤였다. 호퍼는 아내가 운전하는 것을 싫어했고, 운전을 하더라도 주차 때는 자신이 하려고 했다. 조는 굳이 자신이 주차하겠다고 우겼고, 자동차에서 아내를 끌어내려는 호퍼와 운전대를 잡고 버티는 조가 치고받고 싸우는 광경이 목격되기도 했다.
'비너스의 탄생'을 그린 이탈리아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는 짓궂은 인물이며, 복수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그의 옆집에 베를 짜는 사람이 이사 왔는데, 소음 때문에 보티첼리는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는 이웃에 불만을 호소했지만 이웃은 "내 집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답했다. 화가 난 보티첼리는 자기 집 지붕 위에다 커다란 바윗돌 하나를 올려두었다. 그 돌은 당장이라도 이웃집 지붕 위로 굴러떨어져 천장을 뚫을 것처럼 보였다. 이웃이 불평하자 보티첼리는 "나도 내 집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응수했다. 이웃은 시끄러운 베틀을 당장 제거했다고 한다.
노르웨이의 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드 뭉크는 자신의 그림에 인격을 부여하곤 했다. 때때로 자신의 그림들을 '아이들'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노년에는 야외에서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는데, 완성작들을 바람, 비, 태양, 눈에 그대로 방치했다. 그림은 빛이 바래고, 망가지고, 구멍이 뚫리기 일쑤였다. 친구가 그에게 필생의 역작을 그런 식으로 함부로 방치하면 안된다고 충고했지만 뭉크는 "그렇게 방치하면 그림이 자활하는 데 도움이 된다네" 라고 답했다. 그림도 어려움을 겪어야 성장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뭉크의 '절규'에 등장하는 불길한 빨간색 하늘은 예술적인 시도로 해석되지만, 한편으로는 실제 석양의 색깔이었는지도 모른다는 견해도 많다. 1883년 8월 크라카토아 화산이 폭발하면서 25㎦에 달하는 바위와 재를 하늘로 쏘아 올렸다. 기록에 의하면 대기에 남아 있던 먼지가 하늘을 뒤덮어 11월까지 유럽 전역에서 새빨간 석양빛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뭉크가 '절규'에 착수한 것은 1893년이지만, 일기를 보면 그가 그 사건을 보고 드로잉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까 '절규'에 나타나는 붉은 하늘은 예술적 영감이 아니라 자연 현상이었다는 것이다.
책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렘브란트, 고야, 마네, 휘슬러, 드가, 세잔, 로댕, 모네, 루소, 반 고흐, 쇠라, 클림트, 마티스, 디에고 리베라, 뒤샹, 달리, 프리다 칼로 등 역사상 유명한 화가들의 혼란과 사생활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의 시련, 상처, 행복, 개인적인 성공 등을 망라하고 있는데,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그림을 보면 지금까지와 좀 다른 감상평이 나올 만도 하다.
지은이 엘리자베스 런데이는 미술, 건축, 도시설계, 음악, 문학 전문 작가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예술을 창조하는 사람들의 일상과 기벽, 어리석음을 추적함으로써, 예술 감상의 폭을 넓히고 있다. 432쪽, 1만5천800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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