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전쟁에서 핵폭탄이 사용된 것은 1945년 8월 6일(히로시마)과 9일(나가사키) 단 두 차례뿐이다. 이후 엄청나게 많은 핵폭탄이 만들어졌지만 어느 국가도 발사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그렇게 하는 순간 자신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핵폭탄의 가공할 위력이 핵폭탄을 사용할 수 없는 무기로 만든 것이다. 이런 역설에도 불구하고 핵무기는 살아남았다. 핵무기는 존재하는 것 자체로 공포를 자아낸다. 핵무기는 상대방을 위협하는 데는 여전히 쓸모가 있는 무기인 것이다.
소련 지도자들은 이를 매우 교활하게 써먹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흐루시초프다. 소련이 1955년 수소폭탄 개발에 이어 1957년 세계 최초로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인공위성(스푸트니크) 발사에 성공하자 흐루시초프는 서방 진영에 간담이 서늘한 협박을 해댔다. 소련의 미사일 능력은 미국보다 훨씬 우수해 미국과 유럽 어느 도시라도 파괴할 수 있다고 했다. 심지어 목표물마다 미사일과 핵탄두가 얼마나 필요한지까지 명시하기도 했다. 서방 도시의 운명은 자신의 자비에 달렸음을 상기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는 당시 소련을 방문한 미국 정치인 휴버트 험프리를 위협하다가 잠깐 멈추고 어느 도시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험프리가 지도에서 미니애폴리스를 가리키자 흐루시초프는 푸른색 연필로 거기에 동그라미를 쳤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로켓이 공격할 때 이 도시는 잊지 않고 남겨두겠소."
그러나 모두 허세였다. 정말로 핵폭탄을 터뜨릴 생각도 없었고 타격 능력도 부족했다. 장거리 폭격기는 숫자도 적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까지는 편도 비행만 가능했다. 미사일을 '소시지처럼' 생산하고 있다고 큰소리쳤지만 실제 개수는 얼마 되지 않았고 정확한 타격을 위한 정밀 유도 장치도 충분치 않았다. 뒷날 그는 이렇게 실토했다. "대중 연설에서 파리가 얼마나 떨어져 날아다니든 우리 미사일로 맞힐 수 있다고 장담하면 언제나 멋있었지. 나는 좀 과장해서 말했어." 로켓 기술자였던 그의 아들 세르게이는 더 솔직했다. "우리는 있지도 않은 미사일로 위협을 했지요."('냉전의 역사' 존 루이스 개디스)
이런 얘기를 늘어놓은 것은 북한의 연이은 핵 공격 위협을 냉정하게 보자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 6월 24일 노동신문 논평을 시작으로 7월 24일(국방위원회), 8월 24일(김영남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 12월 13일(노동신문), 12월 18일(조국평화통일위원회), 12월 23일(김영춘 인민무력부장) 등 올 들어 모두 6차례나 핵 공격 위협을 퍼부었다. 동원한 용어도 '핵전쟁' '핵 참화' '핵 성전' 등 섬뜩하기 그지없다. 당장에라도 핵 미사일을 쏘겠다는 자세다. 오랜 평화에 길들여져 있는 남한 사람으로서는 겁을 집어먹기에 충분하다.
과연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까.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사용하는 순간 상대방은 물론 공격한 자도 멸망하는 핵무기의 양면성을 상기하면 우리는 북한의 핵 위협을 한발 떨어져 바라볼 수 있다. 핵 미사일을 쏘는 것은 장사정포를 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핵무기라는 판도라 상자를 여는 순간 북한이 뒷감당을 못할 사태가 벌어질 것이란 얘기다. 그 종지부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세습 체제의 종말이 될 수도 있다. 핵무기로 지키려 했던 것이 바로 그 핵무기의 제물이 되는 것이다. 김정일도 그럴 가능성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핵 위협에 너무 떨 필요는 없다. 핵 공격은 불가능하므로 무사태평하게 있어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대비는 하되 실행에 옮길 자신도 없는 2류 깡패의 공갈에 전전긍긍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저 반민족적, 반인륜적 집단의 '매 맞는 아내' 신세를 면할 수 없다.
고(故) 레이건 미 대통령은 소련을 겨냥해 "어떤 체제라도 지도자를 정당화할 평화적 수단이 없으면 태생적으로 불안하다"고 했다. 소련의 붕괴는 이를 입증했다. 소련은 세계를 불바다로 만들 핵 전력을 보유했지만 그것에 손도 못 대고 몰락했다. 우리가 북한의 핵 위협에 떨 필요가 없는 또 하나의 이유다. 길게 보자. 시간은 우리에게 있다.
鄭敬勳(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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