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에서 수십 년째 개인택시 운전을 하고 사는 권대용 씨. 저물어가는 한 해의 끝자락에 애써 그를 만나 점심이라도 대접하고 싶었던 심사는 무엇인가. 그것은 역사에 무임승차한 묵은 빚을 조금이라도 덜어보려는 얄팍한 이기심 때문이었다.
권 씨는 영남의 명가(名家)인 안동 권씨 부정공파(副正公派)의 12대 주손(胄孫)이다. 안동의 천석지기로 40여 명의 노비를 거느리며 관직과 학문이 끊이지 않았던 집안이었다. 그런데 조부인 추산 권기일 선생이 1912년 만주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투신하면서 위풍당당하던 명문거족의 자취는 불과 10여 년 만에 이슬처럼 사라져 버렸다.
추산은 전 재산을 털어 이상룡, 김동삼 선생 등이 만주에서 결성한 경학사에 합류하고 한족회에 참여하는 등 독립운동을 펼치다가 1920년 신흥무관학교 인근 수수밭에서 일본군에게 무참히 살해됐다. 추산의 아들 형순은 광복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도 못한 결과였다. 결국 안동에서 거리의 행상으로 나섰다. 남편은 북을 치고 아내는 간장을 실은 리어카를 끌고 뒤따랐다. 명문가의 장손이, 독립운동가의 아들이 행상으로 전락한 것이었다. 민족의 제단에 몸 바친 죄(?)로 처절하게 몰락해 버린 이 기막힌 이야기는 현재 안동독립운동관장인 안동대 김희곤 교수에 의해 '독립운동으로 쓰러진 한 명가의 슬픈 이야기'란 책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그리고 또 그의 아들, 즉 추산의 손자 대용 씨 역시 궁핍했던 가정 형편 때문에 중학교를 중퇴하고 택시 운전을 하고 있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우리 현대사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해방된 조국에서조차 버림받은 독립운동가 후손의 고단한 삶의 이야기는 왜곡된 우리 현대사에 대한 고발이며 거꾸로 된 세상에 대한 개탄이다. 친일파의 후손이 오히려 호의호식해온 현실에 대한 통곡이다.
그러나 대용 씨는 부친과 조부가 자랑스럽다며 가문에 대한 자긍심을 잊지 않고 산다. 이렇게 사는 것만도 조상의 음덕이라고 한다. 술 찌꺼기를 먹고살아도 일본놈 밑에 빌붙어 사는 것보다는 나았다는 것이다. 자신과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민족 정기도 사회 정의도 안중에 없고 그 알량한 자존심마저 내팽개치는 우리 사회의 지도층들과는 너무도 다르다.
조향래 북부본부장 bulsajo@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홍준표 대선 출마하나 "트럼프 상대 할 사람 나밖에 없다"
나경원 "'계엄해제 표결 불참'은 민주당 지지자들 탓…국회 포위했다"
홍준표, 尹에게 朴처럼 된다 이미 경고…"대구시장 그만두고 돕겠다"
언론이 감춘 진실…수상한 헌재 Vs. 민주당 국헌문란 [석민의News픽]
"한동훈 사살" 제보 받았다던 김어준…결국 경찰 고발 당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