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서관협회가 주관하는 '문학관, 도서관 문학 작가 파견' 사업이라는 것이 있다. 어려운 여건에서 창작활동에 종사하는 작가들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작가들이 특정 문학관이나 도서관과 6개월간 계약을 맺고 그곳에서 창작수업을 월 20시간 진행하는 조건으로 도서관 협회에서 일정금액을 작가에게 지원하는 것이다. 또 해당 작가는 일정량의 창작물을 주최 측에 제출해야 한다. 도서관측에서는 별도의 부담 없이 문학 작가의 창작교실을 진행할 수 있고, 작가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일이라 내가 소속된 도서관에서도 이 사업을 신청했다. 작가로는 서정홍 시인을 지정하였다. 서정홍 시인은 합천 황매산 자락에서 농사를 지으며 시를 쓰는 분으로 언제 한번 도서관 강연회에 초대한 적이 있었기에 조금 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연유로 서정홍 시인이 6개월간 우리 도서관(이전에 근무하던 새벗도서관)에 출근하게 되었다. 시인은 일주일에 한 번씩 합천 황매산자락 나무실마을에서 짐차를 타고 와서 오전에는 어머니들에게, 오후에는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생활글과 시를 가르쳤다.
놀라운 것은 몇 달간 선생님과 글쓰기를 하면서 어머니들이 초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글쓰기 소재는 어머니들의 일상생활에서 가장 가까운 친정어머니'남편 등이었는데, 글을 쓰며 속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기도 하고 때로는 펑펑 울기도 했다고 한다. 이들이 쓴 글은 몇몇 잡지에도 실렸고, 원고료로 유기농 쌀 몇 포대를 받기도 했단다. 아이들도 선생님과 즐겁게 글쓰기를 하였다. 선생님은 프로그램 중반쯤 참가한 이들 모두를 나무실마을로 초대하였는데, 다녀온 이들 모두 행복해했다. 중간에 나는 도서관을 옮겨 뒷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는데 도서관에서 서정홍 선생님과 함께하는 시 낭송의 밤을 열어, 아버지들은 평소 즐겨 읽는 시를 낭송하고 아이들은 자신들이 쓴 시를 읽었다는 흐뭇한 소식을 들었다. 좀처럼 도서관 행사에 참여하지 않는 아버지들이 어떻게 시낭송에까지 참가하게 되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도서관에 오시던 날 서정홍 선생님이 새로 나온 책이라며 몇 권의 책을 두고 가셨는데, 그 책이 바로 이 책 『부끄럽지 않은 밥상』이다. 평소 '우리집 밥상'이라는 선생님의 시를 좋아했는데, 이번 책에도 '밥상'이 들어가 있다. 그만큼 농부들이 정성껏 농사지은 쌀로 만든 밥상을 중히 여긴다는 뜻이겠지. 그동안 잘 몰랐던 선생님의 개인사에서부터 살아온 이야기들이 책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부모님을 여의고 하나뿐인 형님마저 돌아가셔서 방황하며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누나의 소개로 지금의 아내를 만난 일, 공장에서 일하다가 산업재해를 당해 병원에 입원하였고, 그 경험을 글로 써서 전태일문학상을 받은 일, 우리 밀 살리기를 위해 우리 밀 씨앗을 전국 농가에 나눠주며 다니다가 농촌에 노인밖에 없는 것을 보고 직접 농사를 짓기로 마음먹고 덕유산을 거쳐 황매산 자락에 자리 잡게 된 이야기. 지금 선생님은 황매산 자락 나무실마을에서 젊은 귀농인들과 열매지기 공동체를 만들어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다. 글 곳곳에 노인들이 늙고 병든 몸으로 힘들여 농사지은 쌀로 밥을 지어 먹고살아온 지난 세월에 대한 부끄러움과 이웃의 노인들이 한 분 두 분 세상을 뜨면서 우리 농촌이 무너져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배어 있다.
선생님이 어느 강연회장에서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천 명의 의사와 한 명의 농부 중 누가 더 귀하겠습니까? 천 명의 판검사와 한 명의 농부 중 누가 더 귀하겠습니까?" 어찌 보면 참 어리석은 질문이지만, 이 질문에 똑 부러진 답을 하기 힘든 것이 지금 우리들의 부끄러운 모습이다.
직접 농사 지은 풋고추, 케일, 방울토마토 등을 가져오셔서 함께 도시락을 나누어 먹는 즐거움도 컸지만,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문득 내가 왜 그렇게 부끄럽게 느껴지던지. 선생님, 언제 한번 황매산에 놀러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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