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육상 강국을 가다] (1)단거리의 맹주 자메이카<상>

"성적은 시설보다 열정서 나온다" 잔디밭 달리면서도 세계 정상 우뚝

아사파 파월이 소속된 MVP(Maximum Velocity Power) 클럽 선수들이 킹스턴 공과대학 내 훈련센터에서 낙하산 같이 생긴 훈련기구를 활용, 훈련하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아사파 파월이 소속된 MVP(Maximum Velocity Power) 클럽 선수들이 킹스턴 공과대학 내 훈련센터에서 낙하산 같이 생긴 훈련기구를 활용, 훈련하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서인도대학 내 HPC(High Performance center Club) 훈련센터에서 우사인 볼트 클럽 선수들이 훈련하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서인도대학 내 HPC(High Performance center Club) 훈련센터에서 우사인 볼트 클럽 선수들이 훈련하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2007년 유치 후 4년 만인 올여름 대단원의 막을 올린다. 본지는 오는 8월 27일부터 9월 4일까지 9일간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리는 대구 대회의 붐 조성과 성공 개최를 위해 세계 육상계를 주름잡고 있는 육상 강국들을 현지 취재했다. 단거리의 자메이카와 투척의 독일, 중장거리의 케냐 등 육상 강국들은 하나같이 유망주들을 스카우트해 훈련센터에서 집중 조련하고 있다. 훈련센터 관계자들에게서 선진화된 육상 시스템과 훈련법 등을 들어본다.

(1)단거리의 맹주 자메이카(상)

자메이카가 단거리 세계 최강자로 떠오르자 한때 '자메이카에선 육상 선수들이 초원에 치타를 풀어놓고 연습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았다. 치타가 뒤에서 따라오는 상태에서 훈련하기 때문에 살기 위해선 빨리 뛸 수밖에 없다는 것. 한 술 더 떠 '간혹 훈련에서 복귀하지 못하는 선수도 있다'는 '섬뜩한(?)' 부연 설명까지 있었다. 그러나 자메이카의 육상 훈련장에는 치타가 없다. 자메이카 단거리가 그만큼 강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실감나는 유머'일 뿐이다.

자메이카는 최근 몇 년 동안 각종 육상대회에서 최강으로 군림한 미국을 훌쩍 뛰어넘었다. 우사인 볼트와 아사파 파월, 셸리 앤 프레이저 등을 앞세워 2009년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100m·200m·400m계주와 여자 100m·400m 등 단거리 6개 부문 중 5개에서 금메달을 쓸어 담았다. 볼트와 프레이저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남녀 100m에서 우승했다.

◆허허벌판의 잔디트랙

자메이카를 단거리 강국으로 만든 이유 중 시설 부분은 제외해야 할 것 같다. 자메이카의 훈련센터는 실망스러웠다. 세계 최고의 스프린터인 우사인 볼트와 아사파 파월이 각각 훈련하는 클럽을 찾았지만 국내에서 흔한 인조트랙도 없었다. 두 곳 모두 대학 한 쪽에 자리한 허허벌판과 같은 잔디밭에 울타리만 둘러 훈련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또 초원 같은 잔디 훈련장엔 라인도 없이 고깔 모양의 라바콘만 몇 개 세워놓고 트랙과 필드를 구분해 달리기 훈련을 했다. 심지어 훈련장 울타리 너머엔 소 한 마리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잔디밭에서 훈련을 하는 이유는 부상을 줄일 수 있기도 하지만 속사정은 결국 '돈'이다. 인조트랙을 갖춘 번듯한 훈련장을 지을 경제적 여유가 되지 않는 것이다.

자메이카는 중앙아메리카 카리브해에 위치한 인구 260만 명의 작은 섬나라로 1인당 국민소득이 3천달러 정도의 빈국이다. 자메이카 전역에 인조트랙이 깔린 경기장은 4곳밖에 없다. 때문에 대회도 불가피하게 잔디경기장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다 보니 국가대표 선수에 한해서만 대회가 임박했을 때 인조트랙에서 연습할 수 있다. 이 또한 인조트랙에서만 연습할 수 없어 잔디트랙에서의 연습과 병행한다.

물론 잔디나 흙 트랙은 인조트랙에 비해 충격이 덜해 부상 염려를 줄이는 장점도 있다.

자메이카의 네빌 맥쿡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집행이사는 "볼트와 파월이 세계 최고의 선수임에도 잔디트랙을 사용하는 것은 재정상 돈이 없어 인조트랙을 깔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인조트랙 경기장이 있다고 하더라도 부상 방지 및 훈련 효과를 위해 연습은 잔디트랙에서 하고 경기는 인조트랙에서 하기를 권할 것"이라고 했다.

◆비결은 맹훈련

자메이카는 열악한 훈련 환경에도 기술과 맹훈련으로 단거리 왕국으로 우뚝 섰다.

킹스턴 공과대학(UTECH) 내 자리 잡은 파월의 MVP(Maximum Velocity Power) 훈련센터. 파월은 시니어 및 주니어 선수 50여 명과 함께 훈련하고 있었다. 감독은 훈련 내내 "더 빨리 뛰어"라고 고함쳤다. 선수들은 하나 같이 낙하산처럼 생긴 기구를 허리에 매고 트랙에서 전력 질주했다. 바람의 저항을 이용해 스피드를 높이는 훈련이다. 파월 캠프의 스티븐 프랜시스 감독은 이 훈련법에 대해 "공기 저항력을 기르기 위한 훈련으로, 평지에서 언덕이나 모래밭에서 하는 훈련과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이곳에는 현역 3대 스프린터 중 한 명인 파월과 세계 여자 단거리 여제인 셸리 앤 프레이저, 셰론 심슨(베이징 올림픽 여자 100m 은메달), 브리짓 포스터 힐튼(베를린 육상대회 여자 110m 허들 금메달), 셰리카 윌리엄스(베를린 여자 400m 은메달), 마이클 프레터·네스타 카터(남자 400m 계주 금메달) 등 MVP 클럽 소속의 기라성 같은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이 훈련하고 있었다.

이들은 오전 5시부터 오전 7시 30분까지 낙하산 달리기 등 훈련을 한 뒤 운동장 부근의 시멘트 바닥인 넷볼 코트에서 한 시간 정도 스트레칭을 한 뒤 오전 훈련을 끝냈다. 이어 오후 2시부터 3시간 동안 웨이트 트레이닝과 기술 훈련을 했다.

서인도대학(UWI) 내 HPC(High Performance center Club) 훈련센터에선 볼트가 같은 소속 클럽 선수들과 함께 양다리를 쭉 편 채 달리는 등 다양한 훈련으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하워드 아리스 자메이카육상연맹 회장은 "볼트와 파월이 속해 있는 HPC와 MVP 클럽은 자메이카의 양대 산맥으로, 코치와 선수의 질이 다르다"며 "두 클럽의 명장 글렌 밀스와 스티븐 프랜시스의 조련을 받아 유망주들이 스타로 성장한다"고 했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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