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강의 도시를 만들자] <1>뮌헨 이자르 강 복원현장을 찾아서

콘크리트 제방없이 굽이굽이 흐르는 물…아이와 새들이 대화한다

독일 뮌헨시를 흐르는 이자르 강. 뮌헨시는 콘크리트 제방을 쌓아 직강화했던 강을 10여 년간의 공사를 마쳐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했다. 복원 이후 생태계가 회복되면서 수많은 새들과 어류들이 강으로 돌아왔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독일 뮌헨시를 흐르는 이자르 강. 뮌헨시는 콘크리트 제방을 쌓아 직강화했던 강을 10여 년간의 공사를 마쳐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했다. 복원 이후 생태계가 회복되면서 수많은 새들과 어류들이 강으로 돌아왔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복원 공사를 하지 않은 직강화된 이자르 강 구간.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복원 공사를 하지 않은 직강화된 이자르 강 구간.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강은 인간의 삶에 있어 필수적인 존재다. 세계 4대 문명은 물론 전세계 대도시는 어김없이 '강'을 끼고 있다. 19세기 이전까지는 식수와 농업용수, 또는 안보적 개념으로 이용됐던 강이 근대화 이후 공업용수와 운하 등으로 도시발전에 기여를 해왔다.

그리고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강'은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서고 있다. 도시화에 밀려 관심의 대상에서 벗어나 있다 '자연'이란 이름으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친환경이란 단어에 사람들이 열광하기 시작하면서 묵묵히 곁을 지켜오던 강에 대해 새로운 접근이 시작된 것.

변화하는 강을 살펴보는데 유럽은 필수적이다. 강 개발의 역사가 가장 먼저 시작됐고 이에 대한 반성과 복원의 노력이 먼저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지난세기 인간의 욕심이 빚어낸 '개발'과 '수난'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복원의 역사'가 진행 중인 유럽 강을 찾았다.

◆새로 쓰는 라인강의 '기적'

지난 12월 취재진은 독일의 3대 도시 '뮌헨'을 찾았다. 벤츠와 BMW 본사가 있는 뮌헨은 세계 자동차의 수도로 불리지만 2차 대전으로 도심의 80%가 폭격으로 사라진 아픔을 갖고 있다.

독일 특유의 음습한 겨울 날씨 탓도 있지만 뮌헨의 첫인상은 그리 상쾌하지 않았다. 도심 주거지의 대부분은 삭막한 5층짜리 아파트로 채워져 있고 눈을 돌려도 딱히 유럽 도시 특유의 아름다운 건축물은 찾아볼 수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뮌헨 도심 중간을 가르는 이자르 강에 내려선 순간 '시야'의 반전이 일어났다. 강바닥이 휜히 보이는 맑은 물이 숲을 배경으로 하얀 백사장을 감아돌며 한폭의 그림을 연출하고 있었다. 도심 콘크리트 빌딩 숲 사이에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을 접한 것.

강으로 내려갔다. 수십 마리의 고니 떼가 백사장 주변에서 여유롭게 놀고 있고 도심 속 자연을 즐기는 시민들이 있었다.

이제 4개월 된 아들을 안고 이곳을 찾은 글로리아(34·여) 씨는 "뮌헨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고 집이 5분 거리에 있어 산책을 나올 때마다 즐겨찾는 곳"이라며 "몇 년 전 시 정부에서 강 복원 공사를 시작한 이후 현재의 모습으로 변모했다"고 밝혔다.

강변 산책로를 따라 상류로 올라갔다.

이자르강의 상류 지역인 타르키르헨. 도심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곳이지만 마치 '강원도 계속'을 만난 느낌이었다. 아름드리 나무로 뒤덮인 숲 사이로 청정수가 흐르는 강을 만날 수 있었다. 영하의 추운 날씨였지만 가족 또는 연인끼리 강변을 찾은 이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인구 200만 명이 사는 거대 도시, 라인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공업도시 뮌헨에서,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도심 속 자연의 풍경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이자르 강'은 여기서 끝이었다.

알프스에서 발원해 도나우 강(다뉴브 강)으로 이어지는 280여㎞의 이자르 강 중 자연의 모습을 갖고 있는 곳은 불과 8㎞. 나머지 구간은 아직도 개발의 흔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콘크리트 제방 사이로 마치 고속도로처럼 일직선으로 뻗은 직선화된 강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자르 강의 아픔

이자르 강은 개발에 따른 수난의 역사를 고스란히 가진 곳이다. 원래 이자르 강의 폭은 2㎞. 여러 갈래로 갈라진 강들이 범람원을 사이에 두고 흐르던 강이었다. 하지만 뮌헨이 공업도시로 발전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도심 외곽에 있던 이자르 강변까지 도심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개발할 땅이 부족해진 뮌헨시는 이때부터 강폭을 좁히기 시작했다. 이른바 직강화 공사. 1820년부터 시작된 직강화 공사로 도심을 통과하는 강폭은 불과 50여m로 좁아졌다.

굽이굽이 흐르던 강을 일직선으로 바꾸고 이를 위해 강바닥을 파내고 하천변에 제방을 쌓은 것. 수십만 년 동안 변함없는 모습으로 흐르던 강이 도심 오폐수를 받아내고 배가 다니는 인공수로로 전락하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리지 않았다.

여러 갈래로 흐르던 강이 한 곳으로 모이고 유속이 빨라지면서 뮌헨 시민에게 돌아온 혜택은 많았다. 가용할 수 있는 토지가 많아졌고 빠른 유속은 홍수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 또 빨라진 강물을 이용한 수력발전소가 곳곳에 세워졌고 뮌헨이 공업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

하지만 인공화된 강은 '후유증'을 앓기 시작했다. 직강화로 강물이 강바닥을 파내려가면서 강바닥이 10여m까지 낮아진 것. 자연스럽게 지하수 수위도 내려가 안정적인 식수 공급과 농사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

뮌헨시는 1910년부터 다시 토목 기술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강 바닥을 긁어내리는 물살의 힘을 조절하기 위해 바닥에 하상 유지공을 박고 콘크리트 보를 쌓은 것. 이후 홍수의 위험이 있을 때마다 이자르 강에는 최신 이론을 바탕으로 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늘어났다. 100여 년이 넘는 토목공사를 끝낸 이자르 강은 자연의 모습을 완전히 잃었다. 범람원과 모래톱은 사라지고 어류가 살지 않고 새들이 떠난 인공하천이 된 것. 200만 명이 사는 도심을 흐르지만 자연스러움을 잃은 이자르 강은 사람들의 관심에서도 벗어났다.

고통을 겪었던 이자르 강이 다시 시민들에게 돌아오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여 년 전부터다.

뮌헨시 수자원국 홍보담당인 마르티에스 융 씨는 "최신 토목기술도 1980년대 이후 잦은 홍수를 예방하지 못했고 시민들에게 자연을 돌려주자는 운동이 일어나면서 이자르 강 복원 계획이 1990년대부터 시작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뮌헨시와 주 정부는 복원 공사에 필요한 예산과 계획안 마련을 위해 오랜 시간 논의를 했고 3천500만유로(550억원. 뮌헨시 부담 55%)의 재원으로 2000년부터 강 복원을 위한 이자르 강 플랜이 공사에 들어갔다.

마르티에스 융 씨는 "당초 완공은 5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공사 중 나타난 문제점 보완을 위해 공기가 두 배 정도 늘어났고 예산도 20% 증가했다"며 "내년 6월이 되면 도심 통과 구간 8㎞ 복원 공사가 끝나게 된다"고 했다.

현재 복원 공사 공정률이 95%인 이자르 강은 완전히 달라졌다.

50m로 좁아졌던 강폭이 200m로 넓어졌고 직선화된 모습에서 벗어나 굽어진 강물은 모래톱과 섬을 만들었다. 또 어류들이 하나 둘 돌아오기 시작했고 사라졌던 새 떼들도 이자르 강을 새로운 서식지로 삼고 있다. 복원을 끝낸 구간에는 주말이면 5만여 명 이상의 시민들이 돌아온 이자르 강을 즐기기 위해 몰려들고 있다.

하천을 덮었던 콘크리트 구조물을 뜯어내고 인공 수로로 재탄생한 청계천을 보며 환호하고 있는 한국. 하천에 제방을 쌓기 시작한 강 개발의 역사가 일천한 우리는 복원의 역사에서도 뒤처져 있다. 이제 '강 살리기'란 이름을 달고 공사가 시작된 낙동강과 금호강. 대구경북의 강에서 새로운 이자르 강을 만나보길 기대한다.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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