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이 가고 2011년의 새 달력이 벽에 걸렸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됐다. 우리집에서는 연초에 신사나 절에 참배를 가는 것이 관례였다. 그럴 때마다 시주 동전을 던지고 나면 무엇을 빌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아 초조해했다. 지난해는 고민 끝에 "친절한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라고 소망했던 일이 떠오른다. 만약 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저는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는 말을 했다면, 위선자 취급을 받았을지 모를 일이다. 모두가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면서도 현실에서는 타협하며 적당히 지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현실과 신의 세계가 다른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친절함은 나라마다 다르다. 일본인과 한국인의 친절함도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한국인의 친절함이 상대의 마음속까지 파고들어 안심감을 주는 적극적인 것이라면, 일본인의 친절함은 약간 거리를 두면서 상대를 넌지시 지켜봐주는 소극적인 것이다. 자기 나름의 기준으로 친절하게 상대를 대한다고 해도 "한국인의 친절함은 강요하는 듯하다" "일본인은 냉정하다"고 평가받을 가능성이 있다.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친절해지는 일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진정한 친절함은 나라와 문화에 관계없이 상대에게 전해진다. 내가 한국을 떠나기 직전 부동산 업자와 문제가 생기고, 사기 사건에 휘말려 심신이 지쳐 있을 때 가족처럼 도움을 준 사람들이 있었다. 대학원 선배들이다. 그들은 부동산 업자에게 같이 가서 따지기도 하고, 행정기관을 찾아다니는 등 무사히 돈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었다. 한국에 대해 안 좋은 인상을 가지거나 실망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나에게 신경을 써준 것이다. 나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함께 분노하고 격려해 준 것이 무엇보다 고맙게 느껴졌다. 외국인으로서 자신의 무력함을 절감하고 있던 나에게 그들의 친절함은 귀국 후에까지 내 마음을 지켜주는 기둥이 되었다.
지금도 한국에서의 추억 중에 아픔과 함께 따뜻한 기분이 느껴지는 것은 그들의 친절함 때문이다. 작은 친절함이 그 나라 전체의 이미지를 결정하거나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는 경우가 있다. 자신에게는 하찮은 배려일지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상대에게는 매우 귀중한 것이 된다. 반대로 진정한 친절함이 아니라면 타인을 더욱 불행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친절함을 치장한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이기적이고 상대의 신용을 짓밟을 가능성이 있다. 진정한 친절함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저 상대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일본에서는 수년 전부터 자식을 빙자한 사기 사건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노인에게 "여보세요. 난데요"라고 자식을 가장해 전화를 걸어 송금을 하게 하는 사기이다. 노인들의 외로움과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을 이용한 매우 나쁜 범죄이다. 유감스럽게도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상대의 친절함을 거꾸로 이용하거나 속이기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부모도 어린 자식에게 낯선 사람의 친절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시킨다. 먼저 남을 의심하고 미워하는 것부터 교육을 해야 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결혼을 앞둔 대부분의 남녀는 상대가 친절하고 자상한 사람이기를 바란다. 그러면 자신은 친절한 사람일까. 많은 사람들은 친절하면 자신이 손해를 보거나 이용당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을 안고 있다. 사회에서는 친절한 사람을 힘이 없는 약자로 취급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험악해진 요즘 세상에서는 조금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타인에게 친절해지기란 쉽지 않다. 세상과 타인을 욕하며 자신만을 지키며 살아가는 이기주의자에게 굴하지 말고 자신의 친절함을 지켜가기 위해서는 강해야 한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됐다. 친절한 사람이 되기 위해 모두가 조금은 용감해지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요코야마 유카(일본 도호쿠대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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