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경비는 회비로 조달한다. 부상은 다반사다. 그렇다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다. 물론 경기를 보러 일부러 찾아오는 관중도 없다. 그래도 대구경북 사회인 미식축구팀 '대구피닉스' 선수들은 씩씩하다. "미식축구의 매력은? 재미있다는 거죠." 선수들 모두 똑같은 대답이다.
◆미식축구에 '미친' 사람들
평균 나이 34세. 팀원 중에는 띠동갑도 있다. 직장인부터 개인사업자, 미군, 원어민강사까지 하는 일도 다양하다. 160㎝가 조금 넘는 단신부터 180㎝를 훌쩍 넘는 장신까지 있다. 덩치가 큰 거구도,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홀쭉이도 있다. 나이, 직업, 신체조건이 다르지만 모두 미식축구에 미쳐 '대구 피닉스'라는 이름으로 뭉쳤다.
부산 신라대 교직원 김우섭(40) 씨는 한 달에 서너 차례 부산과 대구를 오간다. 벌써 수년째 이어온 특별한 여행이다. 부산에도 사회인 미식축구팀이 있지만 대구를 찾는 데는 대학시절부터 이어온 인연 때문이다. 계명대 재학시절, 미식축구에 입문한 그는 졸업 후에도 함께 땀 흘린 동료들과의 만남을 끊지 못하고 있다. 김 씨는 "대구와 부산은 멀지 않아 큰 불편은 없다"며 "미식축구를 할 수 있다면 더 먼 곳도 갈 수 있다"고 했다.
김강재(30) 씨는 청주, 이광우(36) 씨는 구미에서 팀 훈련에 합류한다. 직장 때문에 대구를 떠나 있지만 이들은 이동거리를 탓하지 않는다.
가장 큰 암초는 가족들의 눈총이다. 미식축구 때문에 대부분은 집안일에 등 돌린 남편으로 낙인 찍혔다. "모처럼 쉬는 날 운동한다고 아침 일찍 나가버리니 좋아할 리 없죠. 부상이라도 당하면 그날은 잔소리 들을 각오를 해야죠."
우리들병원 의사 정석현(45) 씨는 휴가 때마다 가족들의 원망을 들었다. 경북대 의대 신입생 시절 미식축구와 인연을 맺은 그는 현역시절 라인백커(중간수비수)로 활약했고 이후엔 국가대표팀 공격 담당 코치를 거쳐 지금은 대구피닉스 오펜스코디네이터를 맡고 있다. "미식축구가 좋아 휴가 때면 일본에 공부하러 갔죠. 아마도 몇 년간 가족과 여행 한 번 다녀오지 못했던 것 같아요."
애써 휴가를 내 국가대표 코치로 해외 시합에 나갈 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국가대표가 어디 있느냐"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불모지에서 꽃 피운다
주위의 반대에도 미식축구에 빠져 있는 건 '미치도록 재미'있기 때문이다. 공을 갖고 상대진영으로 달리기만 하면 될 것 같지만 미식축구만큼 치밀한 작전과 완벽한 팀워크를 요구하는 경기도 없다고 했다. 11명(공격·수비·스페셜)의 선수는 예정된 작전을 머릿속에 그리며 그라운드에 나선다. 공격진은 상대가 계획한 작전의 허점을 노려 전진을 시도하고, 수비진은 상대의 주공격루트를 미리 파악해 전진을 막는다. 사용되는 전술만 80종류가 넘는다. 강인한 체력을 기본으로 수많은 전술을 숙지하고 선수 전원이 몸뚱이처럼 움직이는 팀워크가 있어야 경기에서 이길 수 있다. 과격한 블로킹과 태클이 펼쳐지지만 그 속에는 상대에 대한 매너와 페어플레이 정신, 팀원끼리의 단결과 협동 등이 녹아 있다.
이 모든 과정은 팀원들끼리 연습과 경기를 통해 스스로 해결한다. 대한체육회 가맹단체도 아니고, 엘리트 스포츠도 아니어서 중·고교 때 미식축구를 하는 선수는 없다.
신경창 헤드코치는 "대학교 동아리에 가입해 처음 풋볼 공을 잡고 선배들의 경험에 의지해 기술을 배울 수밖에 없지만 이런 도전정신이 진정한 풋볼의 매력을 느끼게 한다"고 했다. 이런 열정이 뭉쳐 우리나라는 2007년 미식축구 월드컵에서 호주와 프랑스를 꺾고 종합 5위에 오르는 감격을 누리기도 했다.
불모지에서의 투혼은 자연스럽게 외국인과의 문화교류의 장을 만든다. 미국인 원어민 강사 팀(25)은 "3년 전 교환학생으로 계명대에 와 한국에도 미식축구팀이 있는 걸 알게 됐다. 한국식 미식축구는 힘을 내세운 미국과 달리 상대를 덜 다치게 하려는 동지의식이 강하다. 이 운동을 하면서 한국인의 배려에 대해 알게 됐고, 자연스럽게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캠프 헨리에서 복무 중인 트랜트(31·중사)는 "한국에서 미식축구를 하면서 향수병을 달랜다"며 "열악한 환경과 미식축구가 보편화되지 않은 한국에서 이만큼의 실력을 보여주는 것이 놀랍다. 한국인들과 미식축구로 한데 어울려 그라운드에서 뛰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고 했다. 대구피닉스에는 8명의 외국인 선수들이 뛰고 있다.
◆새롭게 탄생한 대구피닉스
대구피닉스는 개별 활동을 하던 대구경북의 각 대학 출신 풋볼동호인들이 지난해 하나로 합친 일종의 연합팀이다. 1990년대 중반 미식축구 사회인리그가 출범하면서 대학에서 미식축구를 했던 선수들이 졸업 후 각 학교마다 사회인 팀을 만들어 활동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선수구성이 어려워지면서 팀들이 합쳐지기 시작했다. 2005년 경북대와 계명대가 합쳐 피닉스라는 이름으로 연합팀을 구성했고, 다른 팀들은 대구유나이티드로 활동해오다 지난해 단일팀이 만들어졌다. 오펜스 라인맨이며 경북대 미식축구팀 코치를 맡고 있는 홍동혁(38) 씨는 "2000년대 초 대구경북 사회인 팀들이 전국을 제패하며 대단한 활약을 펼쳤지만, 이후에는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했다"며 "대구경북 미식축구의 저력을 되찾자는 뜻이 합쳐져 대구피닉스가 탄생했다"고 말했다.
효과는 당장 나타났다. 첫 출전한 이번 시즌 사회인리그(8개 팀)에서 대구피닉스는 지난 대회 우승팀 서울의 ADT캡스를 꺾고 우승했다. 전신인 레드 스타즈가 2001년 우승한 이후 9년 만에 사회인리그 우승 트로피를 대구로 가져온 것이다. 대구피닉스는 9일 경북대에서 대학리그(35개 팀) 우승팀 부산대와 국내 미식축구 왕중왕전인 '김치볼'을 놓고 다툰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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