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근대미술의 향기] 권진호의 '거리 풍경'

변함없이 흐르는 일상…낯설지 않은 친근함

이 빛바랜 그림 속에 비친 풍경은 벌써 오래된 옛날의 한 지점을 반영한다. 그런데도 그 장면이 그다지 낯설지 않고 친근하게 다가온다면 오히려 신기한 일이다. 마을엔 건물과 나무들이 서로 어울려 자라고 계절과 일기에 상관없이 언제나 생계를 위해 뛰어다니는 이들이 있는 거리의 표정도 여일하다. 반복되는 일상처럼 돌아오는 기념일에 국기를 내거는 풍습도 여전히 계속되어 엊그제 겪은 일인 듯 심상하게 느껴질 뿐이다.

비탈진 오르막길 양 옆으로 가로를 따라 문을 연 점포들이 다닥다닥 어깨를 맞대며 연이어 있고 전신주들과 가로등이 늘어선 말쑥해 보이는 거리는 제법 번화한 도시의 문명 생활을 느끼게 한다. 치마 저고리에 댕기 머리를 늘어뜨린 처녀의 뒷모습에서부터 기모노 차림의 여인에 이르기까지 오가는 행인들의 복장에서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변화의 물결에 직면한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이층 건물의 키를 훨씬 넘겨 지붕들 위로 높이 솟은 우거진 나무가 이런 세태의 변화들을 지켜보는 양 넓게 하늘을 덮고 있어 눈길을 끈다. 문간마다 내걸린 태극기는 작품의 제작 연도를 감안할 때 아마도 처음 그렸던 것에서 나중에 가필된 것 같다. 현대 생활과 다름없는 어떤 활기를 1930년 무렵의 그림 속에 나타난 정취를 통해 엿보게 한다.

이 작품은 권진호의 1933년 10월과 11월로 각각 서명되어 있는 두 점의 다른 수채화와 비교해 볼 때 물감의 발색이나 채색 방식, 붓놀림의 태도 등에서 약간 차이가 난다. 적어도 그 작품들보다 몇 년 더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1930년으로 알려진 제작 시기는 작가가 겨우 대구농림학교에 갓 입학했을 무렵인 15세경에 그렸다는 것인데 아직 필획이 다소 고졸한 듯 보이지만 그래도 품격이 갖춰져 있다. 바로 뒤 33년에 작고 짧게 그은 단필의 붓질이 더욱 자신감에 넘치고 일정한 방향의 리듬감으로 화면을 조직적으로 구축한 점을 봐서 그의 기량이 빠르게 발전을 거듭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34년 조선미전에 처음 입선한 것도 졸업 이전이었으니 그 역시 매우 조숙한 화가였다.

이런 정도의 수채화 수준이 당시 대구 화단에 널리 퍼져 있었음은 권진호와 같이 제13회 조선미전에 처음 입선한 금경연의 경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금경연은 대구사범 심상과에 재학 중이었는데 권진호는 대구농림학교를 나와 대구사범 심상과를 1년 수료하고 교사로 나갔다. 한 사람은 영풍군, 한 사람은 영양군 출신으로 공교롭게도 두 사람 다 같은 해 조선미전에 처음 입선했고 함께 대구사범을 거쳐 교사로서 작가로서 또 교육자로 활동하다가 권진호는 1951년 36세를 일기로, 금경연은 1948년 33세를 일기로 모두 너무나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김영동(미술평론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