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논술고사의 가장 큰 특징은 제시문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대학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 있다. 어려운 제시문을 활용한다고 논술고사의 수준이 반드시 높아지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제시문을 어떻게 선정하여 배열하고 거기서 적절한 논제를 만들어가는가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 따라서 제시문은 고등학교 교과서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을 지닌 자료를 선정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대학은 말로만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이수한 학생이라면 누구나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하지 말고, 교과서를 활용하여 연계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주어야 할 것이다. 심화된 교과수업이 논술고사의 대비로도 이어질 수 있도록 말이다.
논술고사가 교과형으로 나아간다면 결국 본고사 형태로 갈 것이라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대학별 논술고사는 이미 형식상 본고사이다. 따라서 교육정책 담당자들은 대학별 고사가 과거처럼 단순히 지식의 유무에 따라 평가하는 방향이 아니라 문제해결 능력, 사고력, 창의력, 비판력 등을 평가할 수 있는 방향으로 출제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해야 할 것이다. 특히 문제 출제를 담당하는 교수들은 자신의 전공 지식에 집착하지 말고 중등학교 교육과정을 이해하고 중등교육과 대학교육이 단절되지 않도록 연계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앞으로 출제될 논술고사를 제안해 본다. 궁극적으로 논술고사는 전공교과별 능력을 평가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전체적으로 인문사회형 논술, 수리과학형 논술로만 구분하지 말고, 좀 더 세분화하여 개별교과형 논술을 출제하는 것은 어떨까? 특정 대학에서 논술고사를 출제할 때는 공통형(통합형) 문항 1개와 교과별 문항 2, 3개를 함께 출제하는 것이 방법이 될 것이다. 통합형 문항으로는 인성과 창의성, 그리고 대학의 교육 목표와 관련된 학생의 사고능력을 평가하고, 교과별 문항으로는 개별 학생의 관심 분야, 또는 진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도 등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국어교과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 국어과에 진학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이러한 방향으로의 전환이 지금 학교교육에 몰아치고 있는 2009개정교육과정 취지와도 부합한다.
앞으로 대학입시에서는 객관식 문항보다는 논술과 면접 같은 전형의 비중이 더욱 커질 것이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교육의 흐름이다. 흐름을 인위적으로 막는다면 잠시 멈출 수는 있겠지만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학교 현장에서의 논술교육은 더욱 체계적으로 강화될 필요가 있다. 사실, 여기에 오래된 편견이 존재한다. 논술교육이 단순히 대학별 논술고사를 대비하기 위한 논술문 작성 교육으로 이해하는 편견 말이다. 이런 점 때문에 사교육의 단기완성 강좌에 무방비로 유혹되는 것이다. 학교 논술 교육은 쓰기가 전부가 아니다. 오히려 말하기의 비중이 더 크다.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타당하게 발표하여 상대방을 설득하는 토의와 토론 수업은 모두 논술수업의 과정이다. 일방적인 암기와 주입식 교육이 아닌 학생들이 주도하는 교과수업은 모두 논술수업이라고 부를 수 있다. 따라서 논술은 교과목이나 대학입학시험이 아니라 교실수업방식이다. 학생이 작성한 논술문은 그와 같은 지속적인 과정에서 생산된 마지막 결과물일 뿐이다.
대학에서 논술고사를 폐지한다 하더라도 논술수업은 여전히 의미를 지닌다. 본질적으로 교실수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니까 말이다. 나아가 논술수업은 이미 100개 이상의 대학이 실시하고 있는 대학별 구술면접시험을 준비하는 첩경이기도 하다. 특히 심층면접은 말로 하는 논술이다. 아무리 많이 알고 있다고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것을 상대방에게 전달하고 이해시킬 때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최소한 거기에 최선을 다해본 사람일 터이다. 논술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들도 불평만 하지 말고 그 교육방식이 지닌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보라. 그래도 그 교육방식이 무의미하다는 판단이 선다면 마음껏 비판하라.
한준희(대구통합교과논술지원단, 경명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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