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사, 삼, 이, 일, 와~!"
2011년이 시작됐다. 환성이 커지고, 소원을 기원하는 등(燈)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한국 시각 오전 2시.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Vientiane)의 한국식당 '독 참파'(Dok Champa)에선 한국인, 라오스인은 물론 미국인과 독일인 등이 한데 모여 새해를 맞이했다.
◆크리스마스 위해 비엔티안으로
비엔티안은 지난달 24일 도착했다. 전날 오후 8시 버스를 타고 남부 지방의 팍세(Pakse)라는 곳을 출발해 10시간쯤 걸렸다.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함께 할 수 없다면 친구들이라도 만나 재미있게 보내야 한다'는 리아의 강력한 주장 때문에 다른 일정을 모두 접고 택한 길이었다.
우리는 먼저 인터넷을 통해 여행객들이 많이 몰리는 지역, 그리고 특별한 모임이 있는 지를 찾았다. 딱히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해 그래도 대도시인 비엔티안이 낫겠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런데 막상 비엔티안에 와 보니 성탄절 분위기가 나지 않았다. 상점이나 음식점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한 것 말고는…. 그나마 밤이 되면 반짝이는 전구 덕에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겨우 느낄 수 있었다. 캐롤은 큰 마트에 가서야 어쩌다 한두 번 듣는 정도였다. 하루 만에 모임을 찾는 것도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결국 답답한 마음에 리아가 나서서 인터넷으로 모임을 주선하고 장소를 찾았다.
모임은 조촐했다. 연말을 맞아 라오스를 찾은 '카우치 서퍼'(Couch Surfer·숙소 무료 제공을 기본으로 친목을 도모하는 인터넷 네트워크 회원) 2명이 나타났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둘 다 한국과 인연이 있었다. 아니메시(Animesh)라는 인도인은 경영 컨설턴트로 한국에 출장을 간 적이 있단다. 얼마 전엔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는 부모를 방문한 적도 있고. 루나(Luna)라는 이름의 미국녀는 방콕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데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한국행이냐 태국행이냐를 두고 고민했단다. 인도를 떠나 3개월 가까이 인도차이나 반도를 다니며 만났던 여행객 중에 이렇게 한국과 인연이 있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예상치 않았던 인연
독 참파에서의 송년회는 매년 말 갖는 행사에 우리가 새로 합류한 꼴이다. 단골 손님과 직원들이 한데 모여 '송구영신'(送舊迎新) 하는 자리였다. 아무래도 사장이 라오스 여인(주방장이기도 하다)과 결혼한 이유도 있겠지만 정말 가족같이 서로를 살갑게 대하는 분위기가 느껴지는 자리였다. 물론 6개국 출신이 모인 자리에 우리가 새로운 손님으로 더 특별함을 보탠듯 했다.
매년 여는 행사여서 그런지 진행도 매우 재미있었다. 먼저 푸짐하게 차린 음식을 즐기고 서로 술잔을 기울였다. 배도 좀 불러오고 취기가 살짝 돌기 시작하자 선물 추첨 시간. 한 사람씩 뽑기를 해서 각자가 준비한 선물을 가져가는 방식. 뭐가 나올지, 내 선물은 누가 가져갈지 모두 관심이 집중되는 순간이었다.
몇 가지 게임이 진행하자 어느새 모두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외국인 친구들도 적극 동참해 게임도 즐기고 춤도 추며 한껏 흥을 즐겼다.
머나먼 땅 라오스에 와서 2010년의 마지막 밤을 한국인, 라오스인과 이런 식으로 보낼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이것이 바로 여행의 묘미. 여행을 통해 누구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라오스의 '송구영신'
사실 라오스도 다른 아시아 국가처럼 음력 설을 쇤다. 그러나 시기는 우리와는 다른 매년 4월 중순인데, 이 때 최고의 축제인 물 축제(피마이 푼)가 벌어진다. 자료를 찾아보니 웬만한 관광지의 숙박 요금이 2~3배가 오를 정도로 관광객이 몰리는 시기라고 한다. 다만, 관공서나 은행 등 주요 기관은 일찌감치 31일부터 문을 닫고 긴 연휴를 즐겼다.
이번에 비엔티안에서 송년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던 건 그저 큰 슈퍼마켓에서 파는 선물 세트 정도였다. 재미있는 것은 라오스인들도 선물로 양주를 많이 선택한다는 사실이다. 대나무로 엮은 상자 안에 술과 함께 체이서(약한 술 뒤에 마시는 독한 술)와 안주 등을 포장해 판매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이를 들고 가는 라오스인들을 보니 신기하면서도 재미 있었다. 다만, 이곳에서도 비싼 양주는 가짜가 많아 구매할 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씁쓸한 정보도 들을 수 있었다.
집을 떠나 해외에서 새해를 맞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첫 번째는 호텔에서 사람들이 송년 파티하는 것을 서빙하면서 맞이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내와 함께, 다국적 친구들과, 한국인과 라오스인이 한데 모인 자리에서 맛난 음식과 흥겨운 게임을 즐기며 흥미진진하게 보냈으니 그 어느 송년 모임보다 더 의미가 깊었다고 확신한다.
octocho@gmail.com octocho.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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