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물 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지금부터 700여 년 전 나옹선사가 남긴 선시다. 선(禪)은 마음을 한곳에 모아 고요히 생각하는 일이다. 조용히 생각할 시간을 갖지 못하는 이 시대에 이 같은 선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 선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작품이 좋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옹선사가 내가 태어난 영덕에서 나셨다는 그 사실만으로 특별히 애착을 갖는다. 그야말로 무조건 좋아하는 편이다.
나옹선사(1320~1376)는 고려 말 예주부에서 출생했는데, 예주부는 지금의 경북 영덕군 창수면 갈천리다. 고려 말기의 고승으로 공민왕의 왕사이기도 했다. 나옹왕사로 불리는 것은 바로 공민왕의 왕사였기 때문이다. 조선 건국에 기여한 무학대사의 스승이기도 하다. 나옹선사의 스승은 인도의 고승 지공(指空)으로 알려진다. 이 간략한 이력만으로도 당대에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간다. 불교 국가에서 왕사였으니 더 말할 나위 없다.
이 같은 나옹선사의 일대기는 아득한 역사 밖의 것으로 들리지만, 그가 남긴 선시는 700여 년이 지나서도 조금도 퇴색되지 않았다. 퇴색되기는커녕 해가 갈수록 더 큰 빛을 내뿜는 것 같다. 좋은 작품은 시대를 초월한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나옹선사의 '청산은 나를 보고'는 참 여러 사람이 작곡을 하여 가곡으로, 대중가요로, 찬불가로도 불린다. 나는 노래방에 가는 일이 있으면 꼭 이 노래를 내 고향 영덕의 노래라며 자주 부르곤 한다.
이렇게 새해를 맞을 때마다 올해는 이렇게 살아야겠다, 저렇게 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우곤 하지만 그런 계획들의 밑바탕에는 언제나 이 선시의 의미를 두고자 했다. 욕심 없이 어떻게 사느냐고 스스로 반문하기도 하지만. 나 같은 속인이 어떻게 그 의미를 다 실천할 수 있으랴만 그러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다짐을 연초엔 꼭 해보는 것이다.
나옹선사의 이 작품 중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는 그야말로 참으로 가슴을 치는 말이다. 올해는 지난날 묻혔던 티도 씻어내고, 제발 티를 만들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할 텐데 그게 잘 안 되니 걱정이다.
2011년은 그렇게 살아야 할 텐데, 모질게 다짐 한번 해야겠다. 그래서 내년 이맘때쯤은 '그래 잘 살았어'라고 내가 나를 스스로 위로할 수 있도록 말이다.
손경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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