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증오의 세기(니얼 퍼거슨 지음/이현주 옮김/민음사 펴냄)

끝없는 살육의 20세기…원인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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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의 세기' 저자 니얼 퍼거슨은 20세기 극단적인 폭력의 이유를 인종 갈등, 경제적 변동성, 제국의 쇠퇴 등 3가지로 설명한다. 사진은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대학살.

20세기 인류 역사는 피로 물들었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 소련과 나치의 인종 청소와 대학살, 멕시코 혁명 전쟁을 비롯해 중국, 러시아, 에티오피아, 나이지리아, 방글라데시, 모잠비크, 수단, 콩고, 르완다, 부룬디의 내전이 발생했다. 여기에 캄보디아, 아프가니스탄, 북한, 우간다 등의 잔혹한 독재정치, 과테말라, 캄보디아, 앙골라, 보스니아의 폭력 사태 등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난징 대학살, 원자폭탄, 아시아 지역의 광범위한 식민지 건설, 중국의 문화대혁명, 잔혹한 인체 실험 등 인류는 20세기에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자행했고, 21세기에도 그 그늘은 편재한다.

이와 함께 20세기에 인류는 유례없는 진보의 시대를 열었다. 사람살이의 질은 나아졌고, 문화 수준은 높아졌다. 교양과 도덕심, 배려와 예의는 어느 시대보다 더 고양됐다. 민주주의와 복지 개념이 확산되고 의료 및 과학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했다. 인류가 이 인간적인 세기를 살육의 장으로 만들어 버린 까닭은 무엇인가. 전쟁과 살육은 언제라도 재발할 수 있다. 살육을 끝내려면 20세기 학살의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

지은이는 20세기 극단적인 폭력의 이유를 3가지로 설명한다. 인종 및 민족 갈등과 경제적 변동성, 제국의 쇠퇴이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인종간에 극복할 수 없는 유전적 차이가 있다는 인식이 보급됐고, 인종이 뒤섞인 지역들이 정치적 분쟁지역으로 분열되면서 인종 및 민족간 갈등이 증폭됐다.

퍼거슨은 "1940년대 대량 학살이 자행된 지역들(폴란드, 우크라이나, 발칸 반도, 만주)이 여러 민족이 함께 살고 있는 지역과 일치한다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고 말한다. 이런 갈등은 경제적 변동성과 관련이 깊다. 먹고 살기가 어려워지고, 빈부간 격차가 심해지면서 소수민족 집단을 적대적으로 바라볼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또 영국, 스페인, 네덜란드 등 거대 제국이 해체되면서 소련, 독일, 일본 등 새로운 제국이 등장했으며 이들은 영향력 혹은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대량 학살을 자행하는 일이 잦았다. 특히 새롭게 등장한 독일과 소련, 일본은 중앙집권적인 권력체계와 경제적 통제, 사회적 동질성을 추구하면서 더욱 배타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이같은 문제는 20세기 뿐만 아니라 21세기에도 얼마든지 재현될 수 있다.

지은이는 20세기를 '서양 제국의 몰락기'로 본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20세기를 '서양 제국의 세기'라고 보는 것과 다른 시각이다. 그는 1900년 당시에는 서양이 세계를 지배했다고 말한다. 동양으로 알려진 모든 지역에 대해 서양이 지배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영국은 인도를, 네덜란드는 동인도를, 프랑스는 인도차이나를, 미국은 필리핀을 지배했고, 러시아 역시 만주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서 아시아에 대한 서양의 지배력은 급격하게 쇠퇴했다. 1904년 일본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이겼으며, 1978년 중국은 경제부흥으로 세계의 중심으로 도약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20세기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서양 세계의 몰락인 셈이다.

지은이는 "20세기 냉전이 끝나자 흔히 '역사의 종언'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는 지난 100년의 궤적을 잘못 해석한 것이다. 세상은 다시 동양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아시아와 유럽의 소득 격차는 좁혀졌다. 1500년대 이후 4세기 동안 무너졌던 동'서양의 균형이 회복되기 시작했고, 이제 세계는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제 동양 제국이 성장하고 있으며 서양 제국의 쇠퇴는 막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지은이는 쇠퇴하는 제국과 새로 부상하는 제국 사이의 팽팽한 긴장이 이어지고 있으며, 인류는 또 다른 충돌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은이 니얼 퍼거슨은 영국 스코틀랜드 출생으로 옥스퍼드 대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근대 제국주의에 관한 수정주의 역사가 라고 알려져 있으며, 영국 정치평론지 '프로스펙트'의 최고 지성 100인에 선정됐다. 하버드 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 '제국' '현금의 지배' '종이와 쇠' '전쟁의 연민' '금융의 지배' 등이 있다. 940쪽, 4만5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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