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구제역 데마고기

데마고기(demagogy)의 사전적 의미는 '대중을 선동하기 위한 정치적인 허위 선전이나 인신 공격'을 뜻한다. 루머(소문'풍문)나 유언비어와 섞여 쓰이기도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다르다. 보다 대중성과 의도성이 강한 측면이 그렇다.

데마고기의 역사는 오래됐다. 로마의 네로 황제가 도시에 불을 지르고는 그리스도교인들의 소행이라고 소문을 퍼트린 것은 데마고기의 고전으로 꼽을 만하다. '카더라' 수준의 루머가 데마고기로 비화된 사례는 오늘날에도 횡행한다.

1970년대 인기 연예인 정모 씨는 루머 때문에 오랜 가슴앓이를 하고 살았다. 아프리카의 어느 대통령과의 사이에서 흑인 아이를 낳았다는 기막힌 소문 때문이었다. 가수 나훈아도 황당한 루머로 홍역을 치렀다. 투병설, 일본 야쿠자 관련설에다, 스타 여배우와의 염문설과 주요 신체 부위의 훼손설로까지 확대 재생산되면서 공권력이 그의 행적을 추적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사람들이란 무책임하고 허황된 루머에 묘한 흥미감을 가지는 듯하다. 나훈아의 기자회견장에 집중되었던 세인의 관심 또한 그렇다. '사실무근'이라는 경찰의 조사 결과 발표에도 불구하고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며 끝내 궁금증을 버리지 못한다.

구제역 발생이 전국의 축산 농가로 확대되면서 최초 발생지인 안동 지역은 민심이 더 어수선하다. 안동에 거주한다는 자체가 무슨 죄라도 되는 양 지레 면구스러운 느낌이다. 하물며 베트남 여행을 다녀오면서 구제역을 퍼트린 장본인으로 지목됐던 안동의 축산농 세 사람의 심정이야 오죽했을까.

항간에는 공교롭게도 같은 권(權) 씨에다 중간 이름자 또한 같은항렬 자인 '기'(奇)자를 쓰는 세 사람을 뭉뚱그려 '권기삼'(權奇三)이라 조롱하며 축산업을 망친 원흉으로 매도했으니…. 더구나 이 같은 마녀사냥식 여론 형성에는 안동의 양대 정치 세력 간의 갈등 구도가 적잖은 부채질을 했다는 후문도 들린다.

그런데 이들이 구제역 발생과는 별다른 역학관계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또 다른 국면을 맞고 있다. 그제야 방역 당국은 이구동성으로 "그들을 지목한 적이 없다"고 발뺌을 하고 있고, 일부에서는 언론의 성급한 보도 탓으로 화살을 돌리고 있다. '권기삼'에 돌팔매를 날렸던 여론도 돌아서고 있다. 데마고기가 또 생사람을 잡을 뻔했다.

조향래 북부본부장 bulsajo@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