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 출신인 우리 형제 셋이 아찔했던 소방관 생활에 대한 무용담을 나누다 보면 밤새도록 웃음꽃이 만발합니다."
형님 두 분은 정년 퇴임했지만 '소방관 3형제'의 막내로 현직에 있는 전갑중(55·사진) 달서소방서 도원119안전센터장은 형님들과 함께 한 지난날의 소방관 생활에 자긍심과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1980년 대구소방서 중앙파출소가 첫 임지인 전 센터장은 2005년까지 현직에 계시던 형님 두 분은 경북에서, 자신은 대구에서 소방관으로 근무하면서 소방관 3형제의 우애가 남달랐다고 했다.
"우리 소방관 3형제는 특별했어요. 백중(66) 큰 형님은 소방행정 분야에서, 무중(62) 작은 형님은 화재진압 요원으로, 저는 인명구조 요원으로 주로 활약했거든요. 각자 업무가 달랐지만 서로 큰 보탬이 됐지요."
3형제가 모두 소방관으로 몸담게 된 계기는 이랬다. 전 센터장 집안에 지금은 작고했지만 삼촌이 첫 소방공무원을 했고, 큰 형님은 삼촌의 권유로 소방관이 됐다. 1970년대 당시 삼촌과 큰 형님은 대구소방소에서 2대가 함께 근무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1974년 소방관이 된 작은 형님은 당시 경제사정이 좋지 않아 자연스럽게 소방관에 몸 담았다고 전했다.
"저는 중학교 다닐 때 남구 대명동에 살았어요. 집 근처에 화재가 발생해 불구경 갔지요. 그런데 삼촌이 화재진압을 지휘하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그리고 소방호스로 불을 끄는 소방관들이 얼마나 멋있었는지 몰라요."
막내인 전 센터장은 어린시절 이런 추억들이 자신을 소방관으로 이끌었다고 귀띔했다.
전 센터장은 30년간 소방관 활동을 하면서 아찔했던 참사 순간을 많이 목격했다. 대구서부소방서에 근무하던 1995년 4월 28일 상인동 가스폭발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구조대원이었던 그는 사고현장에 선발대로 도착해 최초 상황보고를 했다. 현장 주변 7층 건물 옥상에서 무비 카메라로 현장을 촬영, 언론사에 첫 영상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는 상인동 가스폭발사고가 나던 날이 자신이 소방교에서 소방장으로 승진하던 날이라 묘한 기분이었다고 했다.
또 달서소방서 119구조대 근무 당시인 2003년 2월 18일 지하철1호선 중앙역사 화재참사에도 인명구조를 했다.
4번 출구에서 3차례 인명구조 후 구조대원 7명을 인솔해 현장 확인작업도 벌였다.
"당시 지하 3층까지 구조활동은 정말 힘들었어요. 산소통 1개를 짊어지고 들어가면 자칫하면 산소가 바닥나 위험하니까요. 지금도 자욱한 연기 속에 할머니 한 분의 목소리만 듣고 산소호흡기를 서로 교대해가며 구조한 기억이 납니다."
전 센터장은 2003년 1월 19일 대구소방헬기 합천호 추락사고 때도 출동했다. 호수 중앙수심이 무려 60m나 돼 실종자와 헬기 잔해 수색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했다. 추락 위치를 못 찾아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도 1주일 넘게 텐트를 치고 수색작업을 펼쳤다.
서부소방서에 근무하던 1983년 4월 18일 발생한 초원의 집 디스코텍 화재사고의 참혹한 현장은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사망 25명, 부상 69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대부분 청소년들이었다.
"디스코텍 건물은 일본식 목조건물인데 한마디로 아수라장이었어요. 2층 통로가 협소해 대피하다 계단에 넘어진 시신들이 콩나물시루처럼 겹겹이 쌓여있었죠. 시신이 너무 훼손돼 신원확인은 물론 성별 구별조차 하기 어려웠거든요."
"매달 18일만 되면 두려움이 생겨요. 거성관 화재, 대구지하철참사, 초원의집 디스코텍 화재 등 대형참사가 모두 18일 발생했거든요."
1996년 경북소방본부 항공대를 창설한 큰 형님은 안동소방서·포항남부소방서·칠곡소방서 신축 등 소방사각지대에 청사 증설업무를 주로 했고 2005년 김천소방서장으로 정년퇴임했다. 작은 형님은 1970년대 서문시장 화재, 남문시장 화재, 대한·대도극장 화재 등 화재진압을 주로 했고 2009년 안동소방서장으로 정년퇴임했다.
"1970년대 당시만 해도 소방장비가 아주 열악했어요. 작은 형님은 그때 서문로소방파출소에 근무했는데 높은 철탑망루에서 눈으로 화재 감시업무를 했어요. 당시 망루에 올라 근무하다 화재가 발생하면 벨을 울려 센터에 신호를 보냈다고 합니다."
형님 두 분은 녹조근정훈장과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고 전 센터장은 행자부장관 표창과 대구시장 표창을 받았다. 인천에 살고 있는 큰형님은 지금 심리치료사 2급자격증을 취득하고 수채화 공부를 하고 있다. 대구에 사는 작은 형님은 귀농을 생각 중이라고 전했다.
전 센터장은 "아직 정년이 5년 남았지만 홀몸노인, 모자가정 등 사회 취약계층의 인명을 보살피는데 소홀하지 않겠다"며 "퇴임 후엔 소방관 아저씨를 돕는 소방봉사단 활동을 해볼 계획"이라고 활짝 웃었다.
김동석기자 dotory1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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