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대구시 북구 매천동 농수산물도매시장. 우리가 잠들어 있을 시간, 이곳은 어둠을 헤치며 불야성을 이룬다. 주변 아파트의 불이 하나 둘 꺼지고 어둠이 깊어지면 유일하게 주변을 밝혀주는 곳이다. 농산물을 실은 트럭들이 구름처럼 오가며 새벽 찬 공기를 가른다. 곳곳에는 장작불을 피워놓고 추위를 녹이는 상인들의 모습이 깨어있음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하루의 시작을 여는 새벽 경매는 살아 숨 쉬는 삶의 현장이다. 3일 새벽 5시 30분, 20년 차 경매 베테랑인 장병욱(41'경매사'대구경북원예농협) 씨를 통해 치열한 경매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 봤다.
◆경매 현장
이른 새벽,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농산물들이 트럭에 실려 농수산물도매시장으로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오늘은 과일 경매가 첫 시작이다. 감귤, 사과, 딸기, 수박 등 각종 과일을 담은 상자가 경매장에 빽빽이 들어서 있다. 장 씨는 경매가 열리기 1시간 전에 출근해 전국 시세와 그날 들어온 상품의 상태를 꼼꼼히 확인했다. 경매 준비가 끝났다.
장 씨는 선거유세차처럼 생긴 차량을 타고 등장했다. 장 씨는 마치 선거 때 유세하는 것 같이 50여 명의 중도매인을 상대로 한 표를 호소하는 것처럼 보였다. 파란색 모자를 쓴 장 씨는 '딸랑딸랑' 쇠 종소리와 함께 경매사 특유의 주술과 같은 목소리로 경매장을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마이크로 연방 특유의 소리를 되풀이했다. 출하인에게 한 푼이라도 높은 가격을 받아주는 것이 경매사의 몫. "물건 좋다" "지금 사지 않으면 후회한다" 등 추임새를 중간중간 섞어가며 목소리가 쉬는 것을 아랑곳 않았다.
중도매인들은 무전기 같은 전자경매응찰기를 점퍼 안주머니에 숨긴 채 과일 가격과 수량을 맞추느라 손가락이 분주했다. 좋은 물건을 값싸게 낙찰 받으려는 중도매인들의 치열한 몸짓은 생생한 삶의 현장이었다. '김일수, 355번, 1만5천원….' 최고가를 제시한 중도매인의 낙찰키를 누르자 전자경매판에 경락가가 뜨고 낙찰 받은 사람은 환호했다. 이곳에서의 하루 거래 금액은 평균 2억원 정도. 목이 쉬어라 외치는 경매사의 소리와 중도매인들의 치열한 몸짓 사이로 멀리 붉은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변한 경매환경
경매는 10여 년 전부터 수지식에서 전자식으로 전환됐다. 경매사와 중도매인 사이의 치열한 신경전과 정보전은 예전과 마찬가지이지만 현란한 손놀림을 자랑하던 수지식은 이제 거의 자취를 감췄다.
전자식 경매가 도입되면서 경매에 참가하는 중도매인들은 이동식 전광판과 벽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을 통해 경매가 이뤄지는 상품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전광판에는 품명, 중량(상자나 ㎏), 경락가, 낙찰자 등 다양한 상품 정보가 표시된다. 전자식 경매는 투명성 확보와 경매시간 단축의 장점이 있다.
장 씨는 "예전에 수지식으로 할 때는 짧은 시간에 중도매인들의 손가락을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데 6과 9를 보며 6천900원이라고 할 것을 손가락을 잘못 봐 9천600원이라고 간혹 실수라도 하게 되면 중도매인들이 물건을 던지는 등 한바탕 소동이 일기도 했다"며 "수지식은 경매사들이 단순히 중도매인들이 제시하는 가격을 보는 것이 아니라 중도매인들의 손가락 모양이나 습관까지도 알아둬야 실수를 방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매사의 애환
경매인들은 돼지고기를 즐겨 먹는다. 하루 2, 3시간씩 한 자리에 서서 계속 소리를 질러대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기관지에 좋은 음식을 찾게 된다는 것. 흡사 주술처럼 들리는 경매사들의 추임새는 경매의 분위기를 살리는 동시에 빠르게 진행되는 경매 중간중간에 중도매인들이 대상 상품을 살펴볼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역할을 한다.
더불어 경매에 집중도를 높이고 중도매인과의 팽팽한 기(氣) 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자기 암시적인 성격도 짙다. 차가운 영하의 날씨임에도 경매대에 올라갔다 내려올라치면 경매인의 옷은 이미 축축이 젖어 있을 만큼 체력 소모가 크다. 장 씨 또한 "기관지 보호를 위해 담배를 끊었으며 술은 자제하며 여가시간 틈틈이 헬스, 등산 등을 통해 체력 보강에 힘쓴다"고 털어놨다.
전수영기자 poi2@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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