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새벽을 연다] 시민의 발 지하철

어둠 뚫고…폭설에도 어김없이 달리는 시민의 발

어둠을 뚫고 오는 새벽은 지상에만 오는 것이 아니다. 지하에서도 새벽은 온다. 지하에서의 새벽은 지상의 새벽보다 더 새벽답다. 캄캄한 지하에서 밝히는 불빛은 더욱 빛나기 때문이다. 매일 새벽 어김없이 빛을 달고 나타나는 지하철은 시민의 소중한 발이다. 기자는 대구도시철도 김효종(34'문양승무팀) 기관사와 함께 지하에서의 새벽을 열어보았다.

◆지하철 기관사와 함께 연 새벽

5일 새벽 4시. 김 기관사는 어김없이 침상을 박차고 기상했다. 도시철도 2호선 사월~문양을 운행하는 김 기관사는 어젯밤 근무여서 사월 승무관리소에서 취침을 했다. 오늘 새벽 동료 기관사와 함께 몸 상태 점검과 안전수칙을 외친 뒤 사월 출발역으로 향했다.

출발역으로 가는 길에 김 기관사에게 이른 새벽에 운행하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김 기관사는 "새벽 첫차에는 어르신들이 많이 이용하므로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모셔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피곤하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근래 대구에 눈이 많이 와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못할 때 큰 힘이 돼 줄 수 있어 기쁘다"고 덧붙였다.

출발역에 도착하자 김 기관사는 먼저 운행차량의 차량번호와 차량이름을 점검하는 '지적확인 환호'(차량 밖에서 운행차량을 확인하는 손짓)를 힘차게 했다. 이어 운전실에 올라 차량점검에 들어갔다. 차내 전등 이상 유무, 안내방송 상태 점검, 차량 문 여닫이 상태 등 안전운행을 위해 이곳저곳을 꼼꼼히 살폈다.

또한 차내 전등'광고 훼손 여부, 좌석 손상여부 확인 등 차내를 돌며 일일이 점검했다. 김 기관사는 "출입문 사고가 잦다. 출입문 닫힘 방송이 나온 뒤 출입문이 닫힐 때 무리하게 승차하려다 다치거나 물건 파손 등 사고가 가장 신경이 쓰인다"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기관사는 단순히 차량만 운행한다는 기자의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새벽 5시 30분. 마지막으로 차량 제동 상태까지 확인한 김 기관사는 첫 열차의 시동을 걸었다. 멀리 지하철 빨간 신호등이 황색등으로 바뀌자 드디어 출발했다.

전철 운전석에 처음 타본 기자는 기대감으로 들떴다. 캄캄한 어둠을 뚫고 선로 위를 달리는 전철의 운전석은 승객석보다 울렁거림이 다소 심했다. 직선과 약간 휘어진 곡선을 번갈아가며 선로 위를 조금 달리자 기대감은 멀리 가고 다소 멍한 느낌이 들었다. 변화가 적은 선로위의 질주가 무료해질 법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김 기관사는 손짓으로 운전실의 각종 안전시설을 확인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좁은 운전석에서 승객의 안전을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내가 웃으면 고객이 웃는다." 대구도시철도 입사 7년차인 김 기관사는 토끼띠 새해 새벽도 고객 안전을 위해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의무라고 말했다.

운전실 차창가에 비친 어둠을 뒤로한 채 열차는 다음 역의 밝은 빛을 향해 힘차게 달음질쳤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미지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듯했다. 그렇게 달리기를 50분. 드디어 종착역인 문양역에 도착했다. 그러나 끝은 또다른 시작이다. 내일도 열차는 어둠을 뚫고 오는 새벽을 맞이하며 힘차게 달릴 것이다.

◆새벽을 여는 첫 열차 승객들

새벽 첫 열차를 타려는 승객들의 모습도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첫차 출발시각인 새벽 5시 30분보다 20여 분 일찍 열차에 탑승한 오정희(67'근로자) 씨는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이다. 경산에 사는 오 씨는 승용차를 사월역에 세워 두고 지하철을 이용해 목적지인 성서역까지 간다. 회사 출근시간이 오전 8시이지만 지하철 출발역과 목적지 역은 물론 열차 내에서 새벽 시간을 활용한다.

오 씨는 "지하철을 이용하면 승강장 안에서 느긋하게 신문을 보며 아침 시간을 벌 수 있다"며 지하철 자랑을 늘어놨다. 휴학 중 에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번다는 전문호(23'대학생) 씨는 "새벽 일찍 일어나면 몸과 마음이 상쾌하다"며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매일 새벽 운동에 나서는 장상근(67) 씨는 "수성못에서 아침마다 배드민턴을 즐기는데 범어역에 내려 자전거를 타고 간다"며 지하철을 이용하면 편리할 뿐 아니라 운동도 되는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건설회사에 다니는 김상규(46) 씨는 건설 현장 특성상 일찍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지하철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이런저런 사연을 담은 승객들의 새벽을 여는 힘찬 몸짓은 생생한 삶의 현장이었다.

전수영기자 poi2@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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