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주영의 스타 앤 스타] '심장이 뛴다' 주연 '월드스타' 배우 김윤진

"난 장거리 체질, 이제 절반 왔을 뿐"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되어 있더라'란 말이 이제 연예계를 대표하는 문구가 되어버린 요즘. 배우 김윤진은 참으로 오랜만에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지난 6년간 미국 ABC드라마 '로스트'에 출연해왔고, 중간중간에 한국에 들러 영화 '6월의 일기''세븐데이즈''하모니'에 이어 5일 개봉하는'심장이 뛴다'까지 찍었다. 물론 모두 주인공으로 나섰다. 여배우들의 설 자리가 자꾸 줄어든다는 것이 김윤진에게는 남의 나라 말이라 할 정도로 바쁜 일정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이 자리까지 오는 데는 '벼락스타'로 된 것이 아니었다. 수없는 오디션과 연습, 훈련, 공부가 뒤따랐다. 그래서 '월드스타'라는 말이 그녀의 이름 앞에 붙어도 어색하지 않은 이유다.

"아무리 그래도 월드스타란 말은 아직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에요. 그렇게 되라는 뜻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사실 이런 말을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또 제가 아무리 미국에서 인기가 좋다고 그 사람들이 붙여줄 리도 없고요. 우리나라니까 이렇게 사랑해주시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요. 고마울 따름이죠."

그녀는 연방 손사래다. '월드스타'는 되고 싶은 것이지, 아직 된 것은 아니라면서 말이다. 그런데 사실 되짚어 보면 '월드스타'란 말은 그녀가 먼저 사용했다. 2007년에 낸 '세상이 당신의 드라마다'란 에세이에서 그녀는 1999년 11월 자신의 플래너에 "최고의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타자"란 목표를 세웠다고 밝힌 바 있다. 아울러 '할리우드 정상, 결혼, 행복'이란 것을 이루겠다고 다짐하며 펜던트 안에 새겨 넣었다고도 털어놨다.

목표를 세운 3년 후인 2002년 그녀는 '밀애'로 제23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고, 2005년에 전 세계에 방영되는 미국 드라마 '로스트'에 주연급으로 캐스팅됐다. 또 올 3월 소속사 대표와 결혼에 골인하면서 최근 그녀의 인생에 있어 가장 행복한 때를 보내고 있다. 결국 그녀가 밝힌 것 대부분이 현실로 드러난 셈이다.

"그때 제가 미쳤었나봐요. 무슨 용기가 났었는지. 할리우드에 가보니까 정말 넓은 곳이더라고요. 제가 불가능한 것을 적었다고 생각해요.(웃음) 행복이란 것은 사실 매일 노력한다고 쟁취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게다가 순간적으로 머무르는 것도 아니고요. 저는 행복하다는 것은 자연의 흐름이라 생각해요. 개인이 소유하는 것이 아닌 공유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김윤진의 답에서는 철학자 내음이 묻어났다. 일종의 내공이랄까. 그것이 상당히 높게 느껴졌다. 이 때문에 지금의 '김윤진이란 배우가 있구나'란 생각이 저절로 들게 하는 묘한 기운이 기자를 감싸 안았다.

"저는 연기할 때 호흡이 빠른 편이기는 한데, 첫 테이크 때보다 두 번째가, 두 번째보다 세 번째가 더 좋은 배우예요. 그래서 달리기로 표현한다면 단거리 주자보다 장거리 주자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실제로 학창시절에도 100m보다는 오래달리기를 더 잘했고요."(웃음)

그녀의 목소리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분명 그 느낌에는 그간의 힘든 순간들도 들어있을 테고, 영광도 좌절도 기쁨도 슬픔도 정말 여러 가지가 함축돼 있으리라 생각됐다. 단거리 주자보다 장거리 주자라는 대목이 특히 마음에 와 닿았다. 42.195km를 뛰는 마라톤을 사람의 인생에 비유하는 이유도 드라마틱한 굴곡이 많기 때문이 아닌가. 그녀 역시 그런 삶을 살아온 것을 장거리에 빗댄 것으로 이해됐다.

"달리기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제가 나이로 봐서는 딱 중간을 달리고 있는 것 같아요. 기준을 80세로 보면 중간 정도에 거의 온 셈이죠. 이제부터 훨씬 어른스럽게 살아야 할 것 같아요. 사실 '어른스럽다'가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지만, 흔히 우리가 말하는 자기 말과 행동에 책임지는 것이 어른이라고 하는 것 같거든요. 넓은 마음으로 모든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어른스러운 모습인 만큼 그렇게 되려고 노력할 거예요."

김윤진의 '어른 발언'에 수긍이 갔다. 그래서 조금 더 진지한 질문을 던졌다. "윤진 씨. 그럼 윤진 씨가 생각하는'산다는 것'은 뭔가요?" 그러자 그녀가 해맑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면서 "재미있기도 또 어렵기도 한 질문이네요"라며 눈을 찡긋했다.

"우리는 그냥 눈 뜨고 아침마다 일어나잖아요. 그런데 꼭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아침에 눈이 떠진단 말이죠. 그리고 매일 우리는 내일을 궁금해 해요. 결국 내일이 궁금하다는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다고 봐야겠죠. 저는 바로 그 내일이 아직도 궁금하다는 게 사는 이유인 것 같아요. 내일은 나가서 무슨 책을 볼까, 누구를 만날까. 누구에게 영감을 받고 같은 것들이겠죠. 또 새로운 에너지를 어떻게 받을까도 궁금하고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녀가 최근 촬영한 영화 '심장이 뛴다'의 얘기를 많이 못 나눈 것이 좀 미안해졌다. 그러자 김윤진은 "괜찮아요. 제 얘기는 얘기대로, 또 영화는 영화 이야기로 다뤄주시면 되죠"라며 대범한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이번 영화를 위해 이 말만은 꼭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라고 물었다.

"'심장이 뛴다'는 선과 악을 구분짓기 어려우실 거예요. 박해일 씨가 맡은 휘도의 입장도 제가 맡은 연희의 입장도 '다 그럴 수 있다'라고 느껴지실 겁니다. 그래서 관객들이 어떻게 볼지 궁금한데, 제 마음은 초반에는 연희를 응원하다, 나중에는 휘도를 지지했으면 좋겠어요. 영화를 다 본 다음에는 뭐가 맞는 것인지 서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극장을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특히 '연희 너무 한 것 아냐?'나 '엄마라면 그렇게 해야지'라는 의견이 대립됐으면 좋겠어요. 그런 반응이라면 잘 만든 영화일 것 같거든요. 많이 사랑해주세요."

영화 '심장이 뛴다'는 각자 다른 세계에 살던 남녀가 자기 가족의 생명을 살려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펼치는 뜨겁고 강렬한 대결을 그린 드라마로, 극중 김윤진은 심장병을 앓고 있는 딸을 살리기 위해 어떤 일도 불사하는 엄마 연희 역을 맡아 휘도 역의 박해일과 연기대결을 펼친다. '꽃피는 봄이오면' '순정만화' 등 다수의 시나리오를 쓴 윤재근 감독의 데뷔작인 '심장이 뛴다'는 5일 개봉해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장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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