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민기자] 대구 수성구 천을산 정상, 참전용사 기념비는 쓸쓸히…

새해 첫날, 힘차게 떠오르는 태양을 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찾아든 곳.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성공기원을 위한 해맞이 행사가 성대하게 열린 곳. 바로 천을산이다.

대구 수성구 고산초등학교를 병풍처럼 감싸 안은 채 나지막이 자리 잡고 있는 천을산은 해발 120m의 작은 야산이다. 인근 동네 주민들이 아니면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 정도로 특별하지 않은 주민들의 산책로이자 마을 동산이다.

작고 보잘 것 없는 이 산이 지역민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주변이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기 시작한 불과 10여년 전의 일이다.

인근에서 카센타를 운영하고 있는 한칠근(54) 씨는 "특별할 것은 없지만 산이 낮아 부담없이 오를 수 있고 가까이 있어서 한 번 더 찾게 되는데 오르면 오를수록 매력이 있다"고 말한다.

철탑이 보이는 산 입구 계단에서 잘 다듬어진 등산로를 따라 40~50분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3㎞ 정도의 짧은 등산로지만 주변에는 소나무와 참나무, 아까시나무 같은 잡목이 우거져 있어 어느 큰 산 못지않게 맑은 공기도 마실 수 있다. 배드민턴장과 운동기구들을 갖추고 있어 체력단련도 할 수 있고, 힘들면 쉬어 갈수 있는 정자와 전망대까지 갖추고 있다.

등산로를 벗어나 서쪽으로 나 있는 고샅길을 걷다보면 천을산이 거쳐 온 질곡의 역사도 찾아 볼 수도 있다.

'이곳에서 자랐다.'

등산로 서편 한적한 봉우리에 외로이 서 있는 돌비석에 새겨진 문구다. 돌비석은 6·25 당시 조국의 운명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 174명의 젊은이들이 자진 입대하여 산 아래 고산학교에서 군사교육을 받고 소위로 임관하여 전장으로 배치된 고귀한 뜻을 기리기 위해 세워놓은 기념비다.

6·25전쟁 당시 고산초등학교는 임시로 개편된 육군 제 301 공병교육대의 훈련장이었다.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고산학교는 그야말로 군인들의 훈련장과 다름없었다. 흙으로 지은 토담 교실에서는 아이들의 글 읽는 소리가, 먼지 풀풀 날리는 운동장에선 군인들의 힘찬 구령소리가 운동장을 메우고 있었다. 수업을 마친 아이들은 운동장 한 편에 서 있는 낡은 군용트럭이 신기해 수업이 끝나자마자 곁으로 모여들던 시절이었다. 그 때를 기억하는 50, 60대 장년들은 돌비석의 존재를 알고 있을까. 오솔길 한쪽에 홀로 서있는 돌비석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흔치 않다.

꽃다운 젊음을 나라를 위해 바치고 산등성이에 아무렇게나 자란 잡목들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작은 돌 모퉁이 양쪽에 새겨놓은 174명의 이름을 한 번쯤 더듬어 보는 것은 어떨까?

글·사진 이명준 시민기자 lmj3363@hanmail.net

멘토:김동석기자 dotory1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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