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한류의 새 흐름과 문화 경쟁력

이명박 대통령의 신년사에서도 밝혔듯이 우리 국운이 어느 때보다 융성해지고 있다. 경제 순위가 10위권, 수출 실적 7위권, 세계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는 품목도 늘었다. 각종 지표만 그런 게 아니다.

미국의 CNN은 한국이 동남아의 할리우드가 되었다 하고 전문가들은 아시아를 벗어나 고급 한류로 유럽시장을 개척해야 한다고 열을 올리고 있다. 한류의 새 흐름은 고급 한류로 가는 것이 맞다. 그러나 우리가 이 흐름을 타고 편승할 만큼 문화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것일까. 대중 한류의 대상인 동남아와 유럽은 그 차원이 다르지 않은가.

경제 계량화의 지표가 그대로 문화에 적용될 수 없음은 당연하다. 더구나 우리는 우리 내부의 문화 성숙도마저 크게 미흡한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벌써 혐한류가 발생하고 있다. 일부 스타들의 과다한 개런티 요구나 거꾸로 한국에서 스타가 되고 싶어하는 가수에게 부끄러운 요구를 하는 등의 잘못이 저질러지고 있는 것이다. 남의 것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데 미숙해 중국 등에서도 반감의 정서가 일고 있다고 한다.

더욱이 흥미, 오락 위주가 아닌 고급문화로 경쟁력을 갖추려면 우리 예술교육과 제도에도 큰 혁신이 필요하다. 한국을 알리는 데 일등공신을 한 사물놀이만 해도 음향이 잘 발달한 유럽 극장에서는 무례로 비칠 수 있다. 야외 공연은 몰라도 현지 사람들은 어지럼증을 호소한다. 우리 것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나 우월주의에 취해 '우리 것이 세계적인 것이여'만 외치는 것도 문제다.

그렇다면 전통을 현대화한 것에서 최고의 우리 것은 무엇일까. 전통을 보여 줘야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구별해야 한다. 가령 오케스트라 곡으로 세계에 알려진 명곡이 단 한 곡이라도 있는가. 세계 최정상인 베를린 필도 러시아에서 차이코프스키를 연주하지 않는 것은 모두 그 나라의 전통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뜻일 것이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독일에서 바흐를 연주하고, 그것도 교포 가족잔치 한 것을 무용담으로 자랑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세계가 우리를 보는 눈이 달라진 만큼 우리의 의식도 달라져야 한다. 국가브랜드위원회가 발족하고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공연계도 덩달아 국가 브랜드 상표를 달고 나가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누구도 객관적으로 검증받지 않았고 스스로 꼬리표를 단 셈이다.

다른 오류는 또 있다. 우리 특급 호텔에 한식당이 몇 안 된다. 고급호텔 로비에 값싼 퓨전 음악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호텔 지배인의 자기 기준이 전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사실 제3국의 싸구려 음악보다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가야금 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훨씬 우리 문화의 자긍심을 살리는 길이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국악과 양악이 등을 돌리고 있기보다는 상생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앞으로 우리가 전파해야 할 세계 음악에 우리 것을 담아내려면 서양 기법만으론 정체성에 한계가 온다. 마찬가지로 국악에서도 부족한 양식(樣式)에 대한 공부를 위해 서로에게서 배워야 한다. 다행히 극히 일부에서나마 필요성을 느껴 졸업 후 다시 공부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 같다. 애초에 학점 교류제를 도입해서라도 배울 수 있게 한다면 교육적 효율성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아시다시피 유럽의 문화 장벽은 관세의 장벽보다 높다. 경제가 세계와 어깨를 나누고, 스포츠가 정상에 섰다지만 우리 문화의 경쟁력은 얼마나 될까.

뮤지컬, 오페라, 발레에 외국 공연이 90% 이상을 상회하는 상황에서 외국의 초청을 받는다 해도 당장 뭘 입고 나가야 할지 걱정이다. 창작자와 공연자가 동상이몽이라면 그만큼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다. 기업이 끊임없이 신제품을 만들어야 경쟁력이 생기듯 문화 예술도 마찬가지다. 서양 예술의 모방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현대예술로 문화 경쟁력을 키우는 것,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우리가 해야 할 과제가 아닐까 싶다.

탁계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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