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2세 경영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봄직하다. 2세 경영인 하면 언뜻 '부자'란 이미지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잘빠진 스포츠카를 타고 망나니 짓을 일삼아도 항상 갑의 대우를 받는, 원하는 건 모두 가질 수 있는 영원한 갑의 삶. 바로 잘나가는 2세 경영인들의 삶이다. 그러나 이들의 애환도 적지 않다. 넘기 힘든 아버지라는 큰 산에 막혀 숨죽이고 경영에는 관심이 없지만 단지 가업이라는 이유로 적성에도 맞지 않는 일을 해야 한다. '평안 감사도 싫으면 못한다'는 하소연이 배부른 얘기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가 뭘가?
◆편견이 싫어요.
SK가(家)의 2세가 고용승계 문제로 마찰을 빚은 탱크로리 기사를 야구방망이로 때리고서 '매값'이라며 돈을 건네는 일이 발생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매 한 대에 100만원씩이라며 제 마음대로 정해 행패를 저지른 뒤엔, '공짜로 때렸느냐'라는 반응까지 보였다. 돈 주면 사람을 때려도 된다는 투여서 서민들을 더욱 분노케 했다.
젊은 2세들은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흔히 묘사되는 비뚤어진 모습 탓에 '부모 덕에 흥청망청 노는 애들'이라는 그릇된 편견을 받는 경우가 많다. 대구경북에는 재벌까지는 아니지만 상당한 재력의 기업 2세들도 곱지않은 시선에 힘들어 하고 있다. 경영승계를 기다리는 한 30대 2세는 "열심히 기업을 키워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2세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것이 어쩌면 우리들이 할일"이라며 "이 때문에 항상 '을'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습 경영을 보는 곱지않은 눈총도 바로잡아야 한다. 한 제조회사의 관리부장을 맡고 있는 경영 2세 A씨는 "일부 경영 2세들 중에는 기업을 개인 재산이나 상속 재산쯤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다"며 "능력과 경륜 없이 선대에 경영권을 물려받아 독단적으로 경영하는 경향도 짙다"고 말했다.
아버지 그림자도 넘어야 할 산이다. 일부 대구 기업은 3세까지 경영 승계 작업을 준비 중이지만 아직까지 고령의 창업주가 회사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불혹의 나이를 훨씬 넘어 지천명이 코앞인데도 여전히 수렴청정을 받는 2세들도 많다. 최종 결재권이 없어 바지 사장과 매 한 가지라고 하소연한다. 대구 바닥이 워낙 좁은 데다 아버지의 명성은 크다 보니 친구들과 마음 놓고 술 한 잔을 못 마신다.
한 경영인 2세와 막역한 사이라는 B(37) 씨는 "처음에는 보장된 미래가 있는 친구가 부러웠지만 제약이 너무 따르는 것을 보고 차라리 월급쟁이가 나은 점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 가진 듯 하지만 못 가진 것이 너무 많다는 것. 그는 또 "원하면 모든 것을 가질수 있는 탓에 소소한 즐거움을 모르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평안감사' 하기 싫어요.
굴러온 천복(?)을 스스로 차 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A 기업의 경우 아들이 미술에 관심이 있고 미술쪽으로 전공을 살리고 싶어 하는 의견을 존중해 강압적으로 경영을 맡기진 않는다는 입장이다. B 기업도 마찬가지. 이 장사는 내 대에 끝내겠다며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다.
성서공단 한 기업주는 "아들을 회사 영업부장으로 잡아 놓기는 했는데 영 적성에 맞지 않는 듯 하다"며 "좀 더 지켜본 뒤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길을 터 주겠다"고 말했다. 한 해 수십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한 섬유업체 대표도 "아들에게 공장을 물려주지 않을 작정이다. 현재 박사과정을 착실히 밟고 있는 아들의 꿈이 어릴 때부터 교수인 것을 알기 때문에 일절 사업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쩌면 이런 현상은 세계적 추세다. 서구식 교육을 받은 경영 2세들은 정작 사업보다는 자신의 꿈을 찾아가길 원하는 경향이 짙다. 한국처럼 가족 문화, 유교 문화가 뿌리내려 있는 중국의 경우만 하더라도 민간기업인 90%가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고 싶어 하지만 95%의 2세들이 다른 일을 하고 싶어 한다는 통계가 최근 발표된 바 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에는 20대 초반의 경영인 2세가 가업을 잇기 원하는 부모에 반발, 손가락 네 개를 잘라버린 사건이 일어나 중국 사회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한 기업가는 "평안 감사도 자기가 싫으면 못하는 법이다. 기업가들은 자식을 경영 승계자의 1순위로 생각하고 있지만 사업에 관해서도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기는 매 한가지"라고 말했다.
임상준기자 news@msen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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