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 저미도록 아프고, 무섭고도 잔인했습니다."
올해 첫 '기자와 함께'에 뛰어든 후 느낀 감회다. 지난해 대구경북기자협회에서 주는 신문 기획 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이후 한동안 뜸했던 코너에 기자가 처음으로 몸을 던졌다. 하지만 그 현장이 하필이면 돼지 1천100마리를 죽이는 살처분 사육농장. 어렵사리 현장 취재에 성공했다. 원래 언론은 살처분장에 들어가지 못하게 규정돼 있어 살처분 자원봉사 겸 기자체험 형식으로 영천의 예방적 살처분 현장에 들어갔다.
이달 4일 영천시 고경면 석계리의 한 돼지 농장을 찾았다. 다소의 위장술이 동원됐다. 미리 현장에 도착해 방역복과 방역장화, 장갑 등을 착용하고 살처분 현장에 나와있는 타 공무원과 구별이 가지 않도록 했다. 물론 위험한 일은 하지 않기로 현장에 있는 사람들과 약속을 했다. 돼지 농장으로 향하는 길도 구제역이 발생한 한 농가 때문에 현장 방역검문을 피해 경주를 통해 돌아가야 하는 수고로움도 감수해야 했다.
아시아에서도 일본과 우리나라에서만 하는 구제역 살처분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현장은 힘들고도 마음 아픈 곳이었다. 특히 예방적 살처분 현장은 인근 지역에 발생한 구제역 때문에 살육을 당해야 하는 억울한 현장이기도 하다. 이왕 왔으니 몸소 체험하고 느껴본 일을 풀어낸다.
◆아기 돼지, 베이브와 베이루
기자가 마지막으로 안아주고 이름까지 지어주었던 아기 돼지 베이브와 베이루는 불과 5시간 뒤 하늘나라로 올라갔다. 기자가 처음 돼지농장을 방문하자 농장주와 인부들 그리고 공무원들이 살처분을 위한 절차를 하나하나 밟고 있었다. 그리고 아기 돼지들만 따로 키우고 있는 막사를 보여줬다. 생후 100일도 되지 않은 200마리의 아기 돼지들이 배고프다고 그러는 것인지, 낯선 이가 왔다고 경계하는 것인지 한꺼번에 화음 없는 합창을 계속했다.
제법 자란 돼지는 힘이 세, 기자가 두 마리를 안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갓 태어난 두 마리의 새끼 돼지는 기자의 양 팔로 껴안을 수 있었다. 이제 막 세상을 향한 힘찬 생명의 발걸음을 내디뎠는데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저미는 듯했다. 평소 돼지를 안을 기회가 없었지만 이번에 안은 두 마리는 오랫동안 안아주고 쓰다듬어줬다.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명복을 빌어주는 제스처에 지나지 않았다. 몇 시간 후 베이브와 베이루를 포함한 새끼 돼지들은 산 채로 마대자루 속에 7, 8마리씩 담겨져 생매장당하고 말았다. 기자는 울었다. 이런 생각에. '영화에 나오는 꼬마돼지 베이브는 사람보다 더한 대접을 받고 행복하게 잘 지냈는데, 기자가 안아 준 영천의 베이브는 태어나자마자 건강한데도 생매장이라니…."
200~300㎏에 달하는 큰 돼지에게 마지막 사료를 주는 가슴 아픈 영광(?)도 누렸다. 1천 마리 정도가 사육되고 있는 막사에 들어서자 돼지들의 죽음을 알리는 비명이 귓가를 때렸다. 서 있기도 힘들 정도였다. 무섭기까지 했다. 바로 옆에서 킁킁거리며 울어대는 돼지 울음소리가 참기 힘들 정도였다. 기자가 이 돼지농장 직원의 말을 듣고, 돼지들에게 일제히 사료를 주는 레버를 내리자, 순식간에 정적이 흘렀다. 돼지들이 만찬을 즐기는 소리만이 똑같이 들려왔다. 그야말로 최후의 만찬이 됐다. 이 돼지들은 오후 5시가 지날 무렵 15t 덤프트럭을 타고 매몰지로 향해야 했다.
◆'달도 울고, 별도 눈물을 떨어뜨린다'
"돼지 1천여 마리가 생매장되는 현장에 뜬 달도 울고, 별도 눈물을 떨어뜨립니다. 살아있는 생명을 1천 마리나 죽이다 보니 마치 그 울음소리에 달과 별도 슬픔을 표하는 것 같습니다." 고경면장을 비롯한 영천시 공무원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이날 살처분은 오후 11시쯤 완료됐다. 달은 숨어서 울었고, 별은 초롱초롱 맑은 눈물을 떨어뜨렸다.
정확한 데이터는 이렇다. 돼지 살처분 두수 1천138두이며 공무원 18명 투입, 영천 축협직원 1명, 공수의 1명, 기사 7명 등 인력 27명이 동원됐으며, 장비는 굴삭기 3대, 덤프트럭 4대 등이 투입됐다.
기자가 떠난 마지막 살처분 현장에서는 돼지들의 '꽥꽥' 비명이 밤새 이어졌으며, 악취 속에 그야말로 아비규환을 연상케 하는 돼지들의 대지옥이었다고 현장 공무원들은 전했다. 심지어 힘센 돼지들은 나머지 돼지들을 짓밟고 끝까지 살기 위해 발버둥쳤으며, 어떤 돼지들은 튀어나오려다 포클레인이 찍혀 두 동강이 나는 비참한 사태도 발생했다.
현장 공무원들도 마음이 무너지고 힘도 갑절로 든다. 돼지들이 죽는 장면을 지켜보는 것도 마음이 무너지지만 살처분 매뉴얼대로 돼지들에게 일일이 심장이 멎는 주사를 맞혀 죽인 뒤, 매몰할 수 없는 현실적인 환경 때문에 더 그렇다. 특히 돼지들은 죽기 전 발악을 하기 때문에 잘못하면 자신의 손에 주사할 수도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특히 구제역이 발생한 영천시에는 전 공무원 900여 명이 지난달 성탄 연휴, 새해 연휴도 반납한 채 영하의 날씨 속 밤낮없이 칼바람 맞으며 구제역 조기 종식을 위해 근무하고 있다. 이날 영천시 임고면 돼지 살처분 현장에 동원됐던 공무원 장모(51) 씨는 돼지 매몰작업 중 미끄러져 오른쪽 눈부위가 심하게 찢어지는 부상을 입어 구급차로 병원에 이송돼 치료를 받았으며, 부상 치료 후 곧바로 택시를 타고 다시 살처분 현장으로 돌아와 매몰작업을 계속해 동료들의 가슴을 울렸다. 같은 날 공무원 이모(47) 씨는 살처분장에서 다리 인대 2개가 파열되는 사고를 당했다.
살처분 현장을 빠져나오면서 좋은 소식도 들렸다. 영천지역의 구제역 의심신고가 3, 4일 동안 한 건도 접수되지 않아 이제 구제역이 진정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 이 말을 듣고, 독백을 했다. "다행이다. 베이브와 베이루는 지금쯤 하늘나라에서 맛있는 사료를 먹고 있을 거야!"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탄핵 반대, 대통령을 지키자"…거리 정치 나선 2030세대 눈길
민주, '尹 40% 지지율' 여론조사 결과에 "고발 추진"
젊은 보수들, 왜 광장으로 나섰나…전문가 분석은?
윤 대통령 지지율 40%에 "자유민주주의자의 염원" JK 김동욱 발언
尹 탄핵 집회 참석한 이원종 "그만 내려와라, 징그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