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車헤드램프시장 70% 점유…" '대구의 삼성' SL 이충곤 회장

SL 이충곤 회장.
SL 이충곤 회장.

계열사 국내외 각각 8개(미국 2개, 중국 4개, 인도·체코슬로바키아 각 1개), 자동차 헤드램프 전체시장 70% 점유, 국내 1위, 세계 6위, 지역에 본사를 두고 한 해 매출 2조3천억원을 올리는 효자 기업, 대구의 삼성…. SL은 이외에도 무수한 수식어를 달고 있다. 4일 오전 종업원 8천여 명의 대군을 이끌고 있는 SL 이충곤 회장을 만났다.

◆CEO의 건강은 기업의 경쟁력

"화장하셨어요?"

나이, 이름, 출신 학교 등 이 회장의 제반 사항을 미리 조사했지만 마주하는 순간 튀어나온 물음이었다. 동안이었다. 군살 없는 매끈한 몸매에 건강미 넘치는 얼굴. 67세란 나이가 무색했다. 50대 중·후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직원들과 가끔 목욕탕에서 마주칠 때면 한참 아래 연배의 직원들까지 볼록 나온 배를 가리며 슬금슬금 피할 정도라고 한다.

이 회장의 성공 경영 비결(1980년대 초 46억원 매출의 회사를 넘겨받아 20여 년 만에 2조3천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대기업으로 성장함)보다 동안 비법이 더 궁금했다.

건강은 타고난 50%와 노력 50%라고 말했다. 아버지 고(故) 이해준 명예회장은 해방 첫해 전국 씨름장사 출신이었다. 이 회장도 아버지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큰 키(173㎝)에 타고난 운동 신경 등 경영만큼이나 운동에도 자신이 있다. 경북중학교 시절에는 축구부 주장을 맡아 팀이 최초로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현재에도 대구축구협회장을 10년째 맡고 있다. 건강에 대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건강이 곧 SL의 경쟁력이라는 것. "주 4회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등산도 자주 다닙니다." 40대 후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진단을 받고 야채와 생선 위주의 식단으로 바꿨고 운동도 착실히 해 나가고 있다.

자동차와의 인연도 타고났다. 연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했고 1976년 SL에 입사할 즈음 현대자동차가 설립됐다. "차와의 인연을 맺은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입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자동차보단 '봉사'와 인연을 더 쌓는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기에 아내와 함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 이웃을 도우며 살아 갈 작정. "주님 안에서 살고 주님 안에서 더 큰 기쁨을 찾으려 합니다."

◆가족 관계

6남매 중 맏이. 막내동생과는 무려 14살 터울이다. 이 회장은 어릴 적부터 엄한 가정 교육을 받았다. 자동차 부품 도매업을 한 아버지는 자상했지만 한번 화가 나면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부모님을 속이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면 큰 불호령이 떨어졌다. "회초리가 너무나 익숙했어요." 한번은 아버지께 혼쭐난 뒤 며칠 동안 제대로 걸어 다닐 수가 없었다. "종아리가 퉁퉁 부어 리어카를 타고 등교를 하기도 했어요." 기업은 곧 신뢰라는 점을 아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2남 1녀를 둔 이 회장 역시 자녀들한테는 무서운 아버지로 통한다. '생애 가장 큰 기쁨은?'이란 물음에 장남인 이성엽(41) SL 사장 등 자녀를 얻었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망설임 없이 말하는 그였지만 유독 자식들을 엄하게 키웠다. 100년 기업을 이끌려면 경영 일선에 있는 자식들이 정직, 성실, 근면, 인내, 신뢰란 덕목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두 아들 모두 외국에서 유학을 하고 MBA 학위를 받았지만 한 번도 용돈을 넉넉하게 준 적이 없다. 용돈을 받을라치면 그에 합당한 보고서를 작성해야 돈을 송금해 줬다. "한국에서 부모가 돈 좀 번다고 자식들을 해외 유학 보내 놓고 벤츠나 BMW 타게 하는 것은 자식을 망치게 하는 겁니다." 이런 가정교육 속에 두 아들은 회사에서도 경영 능력을 인정받고 있고 업계에선 이 회장 능력을 앞지르고 있다. 20년 전부터 자식들이 능력이 없다면 경영을 맡기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해 왔던 일이 공수표가 된 것이다. "아이들에게 늘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젊은 나이에 회사에 들어와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 것도 마다한 채 새벽같이 회사로 나와 맡은 일을 성실히 해내는 모습에 감동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따뜻한 부정은 손자·손녀(6명)에게도 차고 넘친다.

자식들에게 통용되던 호랑이 이 회장은 온데간데없고 토끼처럼 온순한 할아버지 이 회장만 있을 뿐이다. "당연히 손자죠.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는 말이 맞아요." 아들과 손자 중에 누가 더 예쁘냐는 물음에 망설임 없이 손자라고 답한다. 얼마 전 손자 녀석과 축구를 하다 다친 발가락도 큰 훈장으로 여긴다. "가족이 있다는 건 너무나 큰 기쁨입니다."

아내에게도 고마움을 표시했다. "우리 나이 때는 와이프한테 잘 보여야 합니다. 아님 쫓겨나기 십상이죠. 늘 곁에서 묵묵히 내조해 준 아내에게 감사합니다."

◆경영 철학

SL의 경영 철학은 '인재 중심의 열린 경영'이다. 회사 광고카피도 "사람이 원동력입니다"라는 문구다. 이는 1970년대 초부터 인간제일주의에 입각한 SL의 정신이다.

이 회장은 "경영이념인 '인간 존중'을 바탕으로 조직 구성원 모두가 한가족이라 생각하고 최고의 기술력으로 최고의 품질을 실현하려고 노력한 것이 SL의 경영 방침"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SL은 지난 반세기 동안 자동차부품전문기업으로 성장해 오면서, 그 원동력인 우수한 인재 확보에 주력하며 사람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SL이 국내외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아 세계 선두권의 자동차 램프회사로 성장하기까지는 인재양성이 주요하게 작용한 것. SL은 직원 연수원 설립, 특강 운영, 열린 토론 등을 통해 직원들의 창조적인 마인드를 키우는 데 어느 기업보다 앞장서고 있다.

과감한 연구개발비 투자도 인재가 곧 경쟁력이라는 정신의 산물이다. 1986년 국내 자동차부품업계 중과학기술처로부터 최초로 인가를 받아 설립한 기술연구소는 SL의 성장축이었다. 현재 기술연구소에는 2008년에 설립한 서울전자연구센터를 포함, 600여 명의 연구원이 연구개발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그 결과 미국 GM사로부터 최우수 공급자상을 14년 연속 수상하는 등 SL의 신용도를 높이고 있다.

협력사와의 상생도 추구하고 있다.

협력사와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도요타 사태를 겪으면서 협력사의 경쟁력이 자사의 경쟁력은 물론 완성차의 경쟁력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느끼고, 자체자금 100억원을 출연해 협력사에 무이자로 지원하고 있다. 아울러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2006년 1월 사재 100억원을 출연해 에스엘 서봉 문화장학재단을 설립, 인재육성을 위한 장학사업과 소외되고 차별받는 사람들에 대한 자선사업을 시작했다.

이 회장은 "기업을 경영해 오면서 최고경영자는 무엇보다 미래를 대비하는 안목과 내일에 대한 꿈을 키워가는 능력이 최대의 덕목이라고 생각해 왔다"며 "'격랑 속에 도전이 있고, 고난 속에 지혜가 생긴다'는 말의 의미를 되새기며 앞으로도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일에 끊임없는 도전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습관된 절약정신…필요한 투자엔 '통큰 회장님'

'내가 짠돌이라고?'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오해할 수 있다. 이 회장은 한 해 2조3천억원이라는 '억' 소리 나는 매출을 기록하는 대기업 수장이지만 너무나 검소한 성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4일 오전 ㈜SL 회장실. 천장에 조명이 여러 개 달렸지만 불빛을 내고 있는 것은 몇 개 되지 않았다. 조금 어둡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결재용 책상과 업무 데스크에 각각 설치된 7.5W짜리 LED 조명 두 개가 은은한 불빛을 뿜어낼 뿐이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에너지를 낭비할 이유가 없죠." 입구 벽면 조명 스위치만 18개. 조명 개수만큼 스위치가 달려 있다. 필요한 불만 켜고 불필요한 전력 낭비를 하지 않기 위해서다. 외국에 출장을 가도, 국내에서도 화장실 불까지 다 끄고 나온다. "내 것은 절약하고 남 것이라고 아끼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난방도 마찬가지. 회장 방이라면 회장이 들어오기 전에 비서가 방을 데우기 위해 수분 전부터 켜 놓는 게 보통이지만 이 회장에겐 비상식적인 일로 통한다.

이런 절약 정신은 소신을 넘어 습관이 돼 버렸다.

현재 지역 최대 거목으로 성장한 SL이지만 1954년 창립한 이래 고비를 수없이 넘겼다. 선친이 여동생이 아끼는 피아노까지 팔아가면서 회사를 일으킨 것도 봐 왔다. 돌아가신 장인어른 역시 검소가 몸에 밴 사람이었다. 처가 역시 한 해 4천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알짜 기업이지만 허투루 낭비하는 법이 없었다. "과거 기업가들이 은행 지점장을 찾아 친분을 쌓아야 했을 때도 도리어 은행장들이 연초부터 선물을 사들고 장인어른에게 인사를 왔을 정도였어요."

이 회장은 사람도 무척이나 아낀다. SL에서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경력과 노하우를 썩히는 법은 없다. 58세가 공식 정년이지만 본인이 애착을 가진다면 65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했다. "사업이 번창할 때 위기를 준비하고 인재가 회사의 가장 큰 자산이라는 것은 기업가라면 항상 마음에 새겨야 할 덕목입니다."

임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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