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창석의 뉴스 갈라보기] 폭설 유감

며칠 전 대구에 함박눈이 내렸다. 눈이 드문 이 지역에서 좀체 볼 수 없던 솜털처럼 보송보송한 눈이었다. 저녁 나절에는 폭설로 변했고 급기야 발목까지 덮일 정도로 쌓였다. 밤 11시쯤에 나는 양말을 두 겹이나 겹쳐 신고 신천변으로 나갔다.

밤늦도록 산책하거나 운동하는 이들이 많은 천변이어서 꽤나 붐비리라 싶었는데, 왠지 내가 사는 파동에서 상동교까지 가는 동안에 사람 구경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여전히 펑펑 쏟아지는 눈을 올려다보며 공연히 히죽거렸다. 사람들이 눈이 오는 줄 모르는갑네.

사실 요즘에는 눈이 그리 반갑지가 않다. 도리어 쌓인 눈은 골칫덩어리고 거리를 지저분하게 만들 뿐이다. 눈만 짜증스러운 게 아니다. 새해가 되었지만 올해만큼 훌쩍 넘긴 적도 없는 것 같다. 너나없이 자신만만하게 너스레를 떨던 새해 소망의 일성(一聲)도, 동해안으로 해맞이를 떠난다는 얘기도 별로 들리지 않았다. 실제로 그랬다. 포항, 울산, 정동진 등 유명한 해맞이 행사들도 거의 취소됐다는 것이다. 새해가 도리어 을씨년스럽다.

아시다시피 구제역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29일에 안동에서 처음 발생한 구제역이 불과 한 달여 만에 전국을 초토화시켰다. 감염이 되었거나 감염 우려가 있는 가축을 살처분한 게 무려 100만 마리를 넘어서고 있다. 한 주 전만 해도 20만, 30만이던 수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심지어 살처분에 필요한 약물조차 바닥나서 생매장하는가 하면 매몰한 지역의 침출수로 2차 오염에까지 비상이 걸릴 형편이다.

도시 경계를 벗어나면 어디나 할 것 없이 방역 약품을 뿌려대는 판에 즐겁게 해맞이를 떠날 수가 없다. 해맞이만 아니다. 매년 100만 명이 찾는다는 화천의 산천어축제도, 무주의 얼음축제도, 태백산의 눈꽃축제도 잇따라 연기되거나 취소되었다. 축제를 준비하고 장사를 해보려던 지역민들이 아우성이지만 대책이 있을 리 없다.

도시 서민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구제역 진화 때문에 당국이 경황이 없어선지, 서민들의 연료인 난방 등유에 대해서 해마다 해주던 보조를 금년에는 한 푼도 해주지 않아 서민들의 방바닥은, 과장하면 얼음이 낄 지경이다. 국가 차원에서도 새해는 별로 희망적이지 않은 것 같다. 각종 원자재와 유가의 상승과 금리 변동의 우려, 유럽발 재정 위기의 예상으로 그토록 자랑하던 수출 대국의 면모가 상당히 우그러질지 모른다고들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의 본성은 싱싱한 활기와 도도한 낭만성을 그리워하는 법이다. 이 팍팍한 산야에, 소와 돼지의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는 음울한 산야에 눈이 내리는 광경을 아름답다며 중얼거리고 싶어지는 것이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소설 '닥터 지바고'는 가혹한 고난 중에서도 희망과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지바고의 가족은 혁명의 격류에 휩싸인 모스크바를 견디지 못해 기차를 타고 우랄산맥으로 피란길을 떠난다. 기차는 군인들과 징용자들과 민간 승객들을 태우고 한없이 느리게 험악한 산맥으로 들어가는데 어마어마한 폭설이 내린다. 폭설은 산처럼 쌓여 기차까지 파묻힐 정도다. 군인들과 징용자들과 온갖 협잡꾼들이 뒤섞여 눈을 걷어낼 때, 주인공 지바고는 어릴 때 품었던 눈에 대한 아름다움을 추억한다. 지바고는 사흘 동안 눈을 치우면서 영탄에 사로잡히고 삶의 생기를 얻는다. 소설은, 인간이란 어둡고 갑갑한 와중에서도 기어이 아름답고 애틋하며, 추억할 만한 것을 찾아내는 위대한 본성을 가졌음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어디 눈만이 그런 역할을 하랴. 길을 가다가, 추위에 손을 비비며 들른 붕어빵 포장마차에서 잠시 보게 되는 빵 장수 할머니의 미소에서도, 횡단보도에서 팔을 치켜들고 건너는 어린아이의 빨간 손에서도 그런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버스 안에서 들리는 흘러간 유행가도, 침대에서 읽는 멋진 책의 한 구절도 다름 아닌 삭막한 세상에 내리는 '함박눈'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삶의 메마른 여정 속에서 만나는 영탄이며 더할 나위 없는 생명의 숨결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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