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강의 도시를 만들자] <3>독일 프라이부르크 베히레

800년간 도심 휘감은 실개천 '전 세계 친환경 수도'로 불려

독일 프라이부르크 시내를 휘감아 도는 인공 수로인 베히레. 800년의 역사를 가진 베히레는 여름철 도심 열기를 식혀주고 바람길 역할을 한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시내를 휘감아 도는 인공 수로인 베히레. 800년의 역사를 가진 베히레는 여름철 도심 열기를 식혀주고 바람길 역할을 한다.
베히레 수원인 드라이잠 강에 설치된 소수력 발전소.
베히레 수원인 드라이잠 강에 설치된 소수력 발전소.

강은 사람들에게 많은 혜택을 가져다주는 존재다.

인위적인 목적으로 손을 대거나 오염이 되면 엄청난 복구 비용뿐 아니라 환경 재앙을 불러온다. 하지만 자연의 법칙을 어기지 않고 활용하는 지혜를 갖고 접근하면 무한의 이용 가치가 있다.

독일 남서쪽 바텐뷔르템베르크주에 위치한 프라이부르크. 태양광을 이용한 전기 생산과 자전거 전용도로 등을 생활화해 전세계적으로 친환경 수도로 불리는 곳이다. 해마다 50여 개국에서 1만여 명 정도가 '친환경 교육'을 받기 위해 이곳을 방문할 정도다. 태양에너지를 이용한 친환경 도시로 10여 년 전부터 명성을 얻은 곳이지만 이 도시의 '강'을 활용한 친환경 역사는 800년에 이른다.

◆도심을 휘감는 실개천

프라이부르크 도심에는 전철이나 버스를 제외한 승용차가 들어올 수 없는 보행자 전용 통행지구가 있다. 700m에 이르는 보행자 전용도로인 '카이저 요셉' 거리에 들어서면 독특한 바닥이 눈길을 끈다.

폭이 20m쯤인 도로 전체가 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잘 맞춰 이은 작은 돌로 채워져 있고 길 양편으로는 폭 50㎝ 정도의 작은 실개천이 흐른다. 도시 역사와 함께해 온 베히레다,

프라이부르크가 생긴 것은 지난 1120년. 이후 100년이 지나 이 도시 시민들은 도심을 휘감아 흐르는 15㎞ 길이의 베히레란 실개천을 만들었다.

"화재를 예방하고 가축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든 인공 수로입니다. 독일 도시 몇 군데에 이 같은 베히레가 만들어졌지만 아직도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곳은 프라이부르크가 유일합니다."

시청이 만든 환경건축 분야 자회사인 이노베이션 아카데미사의 에르하트 슐츠(63) 씨는 "프라이부르크를 대표하는 관광 명소 중 하나가 베히레"라고 소개했다. 서울 청계천 복원 이후 각 도시마다 '친환경'을 내세우며 경쟁적으로 도입한 도심내 인공 실개천의 원형인 셈이다.

800년의 역사를 가진 베히레는 현대 토목공학적 측면에서 평가해도 대단한 시설물이다.

인구 22만 명이 사는 프라이부르크 시내를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베히레는 구배(勾配·자연 표고차)를 이용해 흐르도록 설계가 돼 있다. 도심 외곽을 흐르는 드라이잠 강에서 700m의 수로를 연결해 도심의 가장 높은 언덕에서 낮은 쪽으로 흐르도록 설계가 돼 있는 것.

슐츠 씨는 "도심 전체 표고차가 7m 정도며 추운 겨울철을 빼고는 연중 물이 흐르고 있다. 이곳을 관리하는 용역회사가 따로 있으며 수질은 1급수로 시민들이 1년 내내 맑은 물을 보며 살 수 있고 도심을 통과한 물은 다시 강으로 흘러가게 설계가 돼 있다"고 했다.

베히레가 출발하는 컨빅대로의 수로 폭은 1.5m 정도며 좁은 골목길에는 20㎝ 정도의 폭을 가진 베히레가 흐르고 있다. 도로 크기에 따라 폭이 다르며 좁은 골목길은 건물벽에 붙어있고 대로는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목조 건물이 많던 중세시대 소방용 목적을 갖고 건설됐지만 요즘도 베히레는 훌륭한 기능을 수행한다.

가정이나 건물마다 태양열 시스템을 갖춘 프라이부르크는 독일 전체에서 일조량이 가장 많은 곳. 따라서 여름철 한낮 기온이 39도까지 올라갈 정도로 더운 도시다.

도심 곳곳을 연결하는 베히레는 뜨거워진 땅을 식혀주고 바람길 역할을 하게 된다. 베히레에 대한 시민들의 애정도 각별하다.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프라이부르크 시민들에게 베히레는 놀이터 역할을 하며 15㎞의 길이를 갖고 있지만 종잇조각이나 쓰레기가 떠다니는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

카이저 요셉에서 만난 여고생인 엘레나(16)는 "여름철 등하교 길에 친구들과 베히레에서 더위를 식힐 때가 많다"며 "모든 길에 베히레가 있지만 시민들이 익숙해 빠지거나 다치는 일이 전혀 없다"고 했다.

베히레는 강을 소재로 한 예술작품이기도 하다.

도심에서 30㎞가량 떨어진 라인 강변에서 가져온 다양한 색깔의 돌을 이용해 베히레를 만들었고 바닥의 문양 또한 크기에 따라 모두 다르다.

식당을 운영하는 아반 융커 씨는 "바닥의 돌이 다른 모양으로 돌출돼 있어 베히레마다 다양한 물살을 만들어 낸다"며 "여름철 잔잔히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있으면 더위를 한결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외지인이 빠지면 현지 처녀와 결혼을 한다는 속설을 갖고 있는 베히레는 21세기 프라이부르크를 상징하는 대표 관광상품으로 자리 잡으며 시대에 따라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물레방아에서 수력 발전소로

베히레의 수원인 드라이잠 강으로 올라갔다. 숲이 너무 울창해 멀리서 보면 검은색으로 보인다고 해서 흑림이란 이름을 가진 숲에서 출발하는 드라이잠 강은 50㎞를 흘러 라인 강으로 합류된다.

드라이잠 강 입구 길목 마을인 라벤코프에서 눈길을 끄는 또 다른 수로를 만났다. 폭이 4m 정도인 이 수로는 드라이잠 강에서 베히레로 물을 연결하는 수로다. 프라이부르크 시민들은 이 물길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다.

예전에는 물레방아를 설치했고 지난 1998년에는 소수력 발전소를 만들었다. 깊이가 4m인 이곳에서 생산되는 전력은 120가구가 소비할 수 있는 양. 마을 사람들에게는 친수 공간뿐 아니라 에너지를 선물하는 시설인 셈이다.

드라이잠 강은 독일의 다른 모든 강처럼 150년 전 직강화 공사를 했다. 흑림에서 풍부한 수량을 갖고 흘러내리는 드라이잠 강은 도심으로 들어오는 1㎞ 정도의 일부 구간만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을 한 상태다.

유속을 줄이고 어류들이 상류로 올라갈 수 있도록 돌을 이용해 폭 18m 강 곳곳에 돌보를 설치해 놓았고 직강화된 구간을 S자형으로 돌려 자연스럽게 하천변에 모래톱을 만들었다. 가장 길이가 긴 자연형 돌보는 60m에 이르며 이곳은 여름철 시민들이 물을 즐기는 친수 공간으로 활용된다.

물론 드라이잠 강에도 13개에 터빈을 이용한 소수력 발전소가 있다.

시청 홍보 담당인 토비야스 오드리아 씨는 "15년 전부터 소형 수력 발전기를 설치했으며 이곳에서 2천 가구 정도가 이용할 수 있는 전력이 생산된다"며 "규모가 적고 소음이 없어 주택가 인근에 위치해도 별다른 민원이 없다"고 설명했다. 세계 친환경 도시로 불리는 프라이부르크. 이곳 시민들은 이미 중세 때부터 자연의 원리를 거스르지 않고 이용하는 법을 알았고 요즘도 강을 있는 그대로 생활 속에 끌어들여 즐기고 있었다.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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