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무리 받아쓰기를 잘해도
그것은 상식의 선을 넘지 않는다
백일홍을 받아쓴다고
백일홍을 다 받아쓰는 것은 아니다
사랑을 받아쓴다고
사랑을 모두 받아쓰는 것은 아니다
받아쓴다는 것은
말을 그대로 따라 쓰는 것일 뿐,
나는 말의 참뜻을 받아쓰지 못한다
나무며 풀, 꽃들이 받아쓰는 햇빛의 말
각각 다르게 받아써도
저마다 똑같은 말만 받아쓰고 있다
만일, 선생님이 똑같은 말을 불러주고
아이들이 각각 다른 말을 받아쓴다면
선생님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햇빛의 참말을 받아쓰는 나무며 풀, 풀꽃들을 보며
나이 오십에 나도 받아쓰기 공부를 다시 한다
환히 들여다보이는 말 말고
받침 하나 넣고 빼는 말 말고
모과나무가 받아쓴 모과 향처럼
살구나무가 받아쓴 살구 맛처럼
그런 말을 배워 받아쓰고 싶다
글을 처음 익힐 때부터 우리 받아쓰기를 해왔지. 과거 우리들 아버지의 받아쓰기는 엄격하고도 무서웠지. '하늘'을 '바람'이라 쓰면 절대 안 되었지. 너무 똑같은 말만 받아쓰기가 지겨워 꽃바람 따라 흘러가다가 저물녘 강가에서 들키고 말았지. 된통 야단맞았지. 야단맞고 제 자리로 되돌아왔지.
나는 민들레가 아냐, 민들레가 아냐. 수십 번 외고 외웠지. 우리집 식구는 모두 올망졸망 똑같이 생긴 꽃사과, 아버지라는 나무에 똑같은 열매를 오종종 매달고 있었지. 먹지도 못하는 열매를 감상하시며 그 빨간 빛깔에 아버지 흐뭇해 하셨지. 그게 우리 견딤의 빛깔이란 걸 아셨을까.
새해부터라도 받아쓰기를 제대로 해야겠다. 꽃들과 풀들은 제각기 "햇빛의 말을 다르게 받아써서" 스스로 제 빛깔을 내지 않던가. "모과나무가 받아 쓴 모과 향처럼", "살구나무가 받아쓴 살구 맛처럼" 다시 받아쓰기를 해야겠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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