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서울 따라하기와 좋은 도시 경쟁

우리 사회에서 '사람'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증가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공정사회를 들고 나온 것이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서가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복지 정책은 이제 중앙 정치권의 중심적인 화두가 되고 있다. 지난해 치러진 6'2지방선거에서도 무상급식으로 대표되는 복지 공약이 핵심적인 쟁점이 되었다. 뉴타운으로 대표되는 각종 지역 개발 공약이 승패를 좌우했던 2006년 지방선거와 뚜렷이 구별되는 현상이었다. 그동안 물리적 개발과 성장에 대한 강조 때문에 뒷전에 밀려나 있던 사람에 대한 투자가 지자체에서도 새로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지자체들은 대규모 인프라 투자나 국제 이벤트 개최, 경제자유구역과 같은 특구 지정, 대기업의 투자 유치를 통해 지역 발전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고속도로 신설이나 KTX 개통이 도시 간 접근성을 높일지라도 수도권으로의 유출 효과 때문에 지역 발전을 담보해주지는 못한다. 과도하게 지정된 각종 특구는 지방에 대한 투자 유치로 이어지지 못해 지정 취소 요구가 확대되고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서울 따라하기도 지방도시가 지향할 바는 아니다. 서울은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인 머서(Mercer)가 발표한 '2010년 삶의 질' 평가에서 81위에 불과하였다. 1, 2위를 차지한 비엔나와 취리히와 같은 작은 북유럽 도시들은 차치하고라도 아시아 도시들 중에서도 28위의 싱가포르, 40위의 도쿄, 공동 41위의 고베와 요코하마에도 한참 뒤지는 초라한 성적이다. 이런 서울의 정책들을 뒤따라갔던 지방 도시들은 과도한 부담과 비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에서 시작된 뉴타운 사업은 유행처럼 번져 지방 도시에서도 따라하기에 바빴지만, 정작 서울에서는 이미 엄청난 부작용을 낸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되고 있다. 서울의 초고층 대형 아파트 붐을 재현한 지방 대도시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건설 사업은 대량 미분양 주택의 원인이 되었다.

이제 지방 도시들은 좋은 도시 만들기로 경쟁에 나서야 한다. 대규모 개발 사업도 아니고, 큰 도시 따라하기도 아니라면 어떻게 좋은 도시를 만들 수 있을까? 일찍이 세계적인 계획가인 존 프리드만은 좋은 도시(good city)란 인간적인 풍요로움과 다양성에 기초를 두고 주택, 저렴한 건강 관리, 괜찮은 일자리, 적절한 사회서비스 제공 등의 물리적인 기반을 갖춘 도시로 규정하고 있다. 도시의 핵심은 정체성의 형성과 연대성이다. 여기에 바탕을 두지 않은 도시는 인간과 물리적 건축물의 집적지에 불과할 뿐 좋은 도시가 될 수 없다.

지난여름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마을 만들기, 공동체 살리기에 성공한 도시 재생 사례 지역들을 찾아나선 적이 있다. 부산의 물만골공동체, 대구의 삼덕동, 통영의 동피랑마을이 그곳이다. 대부분의 도시 재생 사업들이 전면 철거로 원주민을 쫓아내고 획일적인 아파트 단지를 만들어내고 있는 가운데 주민들과 지자체,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만들어가는 이 마을들은 이미 전국적인 명소가 되어 있었다. 서울을 따라하지 않았기에, 다른 지역과 다른 지역 자산을 가꾸고 만들어냈기에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새로운 한 해를 출발하는 민선 5기 지자체들은 전국을 선도하는 좋은 도시 정책들로 경쟁해야 한다. 더 이상의 난개발과 과도한 개발을 거부하고 스마트 성장과 슬로시티를 지역 개발의 원칙으로 선언하는 지자체가 나와야 한다. 전면 철거의 전면 중단과 공동체에 기반한 도시 재생 사업의 추진을 내걸 수도 있다. 일본의 혁신 지자체에서 시행되었던 시민생활 최저기준제도(civil minimum)를 도입하여 시민들이 안전, 건강, 쾌적성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저 수준을 지자체가 보장해 주겠다고 약속할 수도 있다. 전국 최고의 인권도시를 선언하면서 도시의 인권조례를 제정하고, 인권 전담 옴부즈맨 제도를 도입할 수도 있다. 도시의 예산 제안과 심의에 시민들이 참여하는 참여예산제도를 성공적으로 도입한다면 존경받는 도시가 될 것이다.

사람과 복지에 대한 관심이 예산과 재원의 배분에만 한정되어서는 곤란하다. 사람에 대한 존중,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공허하다. 국가나 지자체가 베풀어주는 복지가 아니라 지역의 정체성과 연대성에 기반한 공동체를 지원하는 정책이 되어야 한다. 물만골, 삼덕동, 동피랑에서 시도되는 작은 공동체 운동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좋은 공동체가 모인 도시가 좋은 도시가 될 수 있다. 좋은 도시는 결국 살기 좋은 도시가 되고, 경쟁력 있는 도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변창흠(세종대 교수·행정학과)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