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대구 물총새와 부산 조개'

대구시장님과 부산시장님은 어릴 적 이솝우화를 읽어보셨으리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갈매기와 조개 얘기도 기억하실 것이다. -큰 조개가 살을 드러내고 햇볕을 쪼이고 있는데 갈매기가 속살을 먹으려 부리를 넣자 조개는 입을 다물어 부리를 문다. 갈매기는 '며칠만 비가 안 오면 네가 먼저 말라 죽을 것'이라고 버티고 조개는 '부리를 계속 물고 있으면 네가 먼저 굶어서 죽을 것이다'며 어느 쪽도 양보를 안 한다. 결국 지나가던 어부가 힘 안 들이고 양쪽 다 잡아간다는 줄거리다.- 이솝우화로도 알려져 있지만 일찍이 중국의 전국책(戰國策)에 나오는 방휼지쟁(蚌鷸之爭)에서 유래한다. '방휼의 싸움'에서의 방(蚌)이란 큰 조개를 말하고 휼(鷸)은 이솝의 갈매기가 아닌 물총새다. 교훈적 의미로는 '어부지리'(漁父之利'서로 자기가 먹으려고 이익을 다투다가 결국 제3자가 쉽게 이득을 얻게 되는 형세)를 뜻한다.

지금 동남권신공항을 놓고 서로 내 쪽으로 끌어와야 한다며 치열하게 다투고 있는 대구시(경북'경남'울산 포함)와 부산시의 기 싸움이 바로 방휼지쟁처럼 보인다. 돌아가는 판세(勢)를 보건대 오랜 친구였던 대구 부산이 원수처럼 싸울 동안 멀찌감치 인천공항이란 어부가 그물을 들고 때만 기다리고 있는 방휼지쟁 형세가 돼가고 있다. 2조 원이 넘는 공항 4차 개발 예산 중 90% 가까운 1조 8천억 원을 몽땅 인천공항에만 쏟아붓도록 편성해 놓고 동남권신공항에는 '입지 평가 결과에 따라 추진한다'는 한 줄짜리 보고서만 달랑 붙여 놓은 중앙정부의 속내가 그 징후다.

하기야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이 정권으로서는 어느 쪽도 미리 표 나게 편들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인천공항이라는 '어부' 쪽을 챙기면 수도권과 충청권의 3천만 지지 인심을 얻지만 물총새와 조개 쪽은 어느 쪽 손을 들어줘도 700만~800만 밖에 건질 게 없다. 굳이 그런 정치적 시각으로 살피지 않더라도 지방공항엔 아예 예산 책정조차 안 하는 속셈 속에는 '시골 공항쯤이야 제주도 여행이나 보내고 휴가철 전세기나 몇 대 띄워주면 족하지 웬 허브공항 타령이냐'는 중앙집권적 사고가 잔존한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갈수록 그런 기미가 뻔히 눈에 들어오는데도 양쪽 시장님들은 조개와 물총새처럼 서로 물고 버티고만 있다.(정부가 결정을 미적거리니까 본의 아니게 물고 있는 부분도 있지만) 그 사이 대구시장은 방휼지쟁이 인천이라는 어부 좋은 일만 시키는 빌미가 될 수 있다는 걸 인식한 듯 어느 쪽이 되든 선(先) 합의 후(後) 토론하자고 주장했다가 새해 들어 밀양 유치가 안 되면 정치적 용단(사퇴?)을 내리겠다는 쪽으로 선회해 버렸다. 부산시는 거꾸로 영남권 5개 시도의 공동합의문 체결을 거부하고 혼자 쏙 빠졌다가 무슨 속셈인지 새해 들어서는 신공항 건설 촉구 대정부 건의문을 같이 발표하자고 나섰다. 어부의 그림자를 봤는지 이도 저도 안 될 것 같으니까 김해공항 확장 카드라도 써먹을 요량으로 명분 쌓기 계산을 하는 건지는 알 수 없다.

그런 마당에 누가 봐도 대구 주장이 맞다 할 만한 합리적 큰 논리를 찾고, 만들어내는 역량 결집 없이 유치 서명 운동하고 플래카드나 내거는 낡은 방식으로는 못 이긴다. 밀양이 가덕도보다 가깝지 않으냐는 근접성 논리 정도는 약하다. 가덕도와 밀양 간의 거리 차이는 울산 경우 불과 19㎞, 경주는 32㎞, 안동'구미'대구는 42㎞ 내외, 진주 6㎞, 창원 13㎞ 정도의 차이밖에 없다. 승용차로 고작 10~25분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진입도로 상태를 개선하면 더 단축된다. 인천공항 경우도 공항철도 고속화가 더 완성되면 중북부지방 도시들의 시간차 역시 점점 미미해진다. 허브형 지방공항 무용론의 논리로 뒤바뀐다. 따라서 근접성 같은 빈약한 논리보다 미래 국가 균형발전을 근거로 한 큰 논리의 연구와 개발이 필요한 것이다. 여론 몰이나 정치적 정서만 따지고 물고 늘어지는 방휼지쟁의 싸움으로는 인천과 김해공항이라는 어부들에게 다 쓸어 담아주는 빌미만 주게 된다.

정부 용역을 밀어낼 만한 밀양공항 싸움의 큰 전략, 그게 무엇일까. 결국 지역 정치권, 학계, 경제계, 시민단체 리더들이 풀어내야 할 과제다. 그나마 지역 언론들이 분투하고 있다. 물총새, 힘내자!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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