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삭막한 벽, 그림 한 점 걸 때의 행복은…"

개관 30년 대구 동원화랑 손동환 대표

▲올해 화랑 개관 30주년을 맞은 동원화랑 손동환 대표가 그림을 들어보이며 웃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올해 화랑 개관 30주년을 맞은 동원화랑 손동환 대표가 그림을 들어보이며 웃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화가의 화실에서 나는 물감 냄새가 좋았다. 화가들의 진득한 정이 좋았다. 그래서 시작한 화상(畵商)의 길이 벌써 30년이 됐다. 동원화랑 손동환 대표는 개관 30주년을 맞는 감회가 남다르다.

"시대가 화가를 변화시키고, 또 새로운 화가를 낳는 것 같습니다. 이것을 30년간 지켜봐올 수 있어 좋았던 세월이었죠."

그는 1982년, 지금의 중구 봉산문화거리에 처음 자리 잡고 봉산동 화랑 시대를 열었다. 당시에 대구에는 맥향, 송아당, 중앙, 이목, 태백, 삼보, 수 화랑 정도가 있었다. 지금까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는 곳은 서너 개가 전부다.

그는 그동안 기획전시만 300회쯤 열었다. 대관전시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이 동원화랑의 자존심이다. 화랑을 거쳐 소위 전국구 스타 작가로 떠오른 작가들도 한둘이 아니다. 그는 인연을 맺은 작가들과 인간적인 관계가 두텁다. 작가들은 취흥이 오르면 붓과 종이를 앞에 놓고 저마다의 끼를 발산하기도 한다. 그의 집에서 대취한 작가들이 남겨 놓은 흔적은 작가의 인간적인 면모를 그대로 보여준다.

"한 번은 화가 사석원과 인근 횟집에 간 일이 있어요. 취흥이 오른 사석원은 가게 방 벽에다 즉석에서 그림을 그렸죠. 나중에 이것을 가게 전체 도배값 만큼 주고 사온 일도 있어요. 탐내는 사람들이 많아 지키느라 힘들었죠."

그에게 그림은 '행복'을 의미한다. 처음 그림 한 점을 집에 걸었을 때의 기억을 지금도 잊지 못 한다. 그냥 봐도 좋고, 술 한 잔 하고 봐도 좋았다. 지금도 삭막한 벽에 그림 한 점 걸어주고 나설 때의 행복한 기분이 참 좋다. 자신이 추천한 그림에 감동하는 이들을 만나는 것이 큰 보람이다.

그는 점점 새로운 것에 열광하는 미술 시장을 목격하고 있다. 요즘처럼 그림이 재테크의 수단이 된 것은 불과 5년 전. 미술 경매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사람들이 그림값이 오르는 작가에게 열광하게 되고, 스타 작가가 만들어졌다. 그는 이런 현상이 안타깝다.

"미술시장의 변화가 너무 심해요. 새로운 것도 좋지만 너무 빨리 흐르죠. 그래서 정작 재미있는 것을 못 보고 지나칠 수 있습니다. 그림은 돈 이전에 행복을 주는데 말이죠."

그는 그림값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화가들과 함께 부대끼다 보면 작품 당 수백만원 하는 그림값이 전혀 비싸게 느껴지지 않는단다. "흐린 풍경을 그리는 작가는 눈이나 비만 오면 거리를 헤매죠. 스케치 여행을 떠나는 것이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짐승이 먹을 것을 찾아다니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스타 작가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의 화가가 어렵게 살고 있기도 하고요."

그는 올해 개관 30주년을 맞아 다양한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18일 '영남화단 100년-그 순수와 열정의 기억'전을 시작으로 김창태, 하정우, 조영남 등의 전시를 추진 중이다. 연말에는 그동안 화랑과 오랜 인연을 맺어온 작가들을 불러 모아 스스로 만들어온 역사를 자축할 계획이다.

"동원이라는 사다리를 타고 더 높은 곳으로 가는 작가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거창한 계획보다는 지금까지 그랬듯이 한 발 한 발 앞으로 갈 겁니다. 작가들과 함께 가는 화랑으로 남고 싶어요."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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