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통령 인사권에 반기…한나라당發 레임덕 시작되나

당·청 조율없이 대통령 인사권에 정면 반기

대통령의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이 가시화됐다. 한나라당이 이명박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인사권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청와대와 사전조율은 없었다. 충격받은 청와대는 '(이 대통령이) 탈당을 하라는 것이냐'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에 대해 자진사퇴를 촉구한 한나라당발(發) '거사'가 함축하고 있는 정치적 파장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그동안 삐거덕대던 당청관계도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발단은 10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였다. 비공개로 전환하자마자 안상수 대표가 정 후보자에 대한 여론을 전하면서 의견을 구하고 나섰다. 홍준표, 서병수, 정두언 최고위원이 가세하면서 최고위원회의는 '만장일치'로 정 후보자에 대해 부적격 판정을 내리고 원희룡 사무총장을 통해 청와대에 '통보'했다.

30여 분 후 안형환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주말 동안 많은 여론 수렴을 통해 국민의 뜻을 알아본 결과, 정동기 후보자는 감사원장으로서 적격성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는 판단을 하기에 이르렀다"며 "정 후보자는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는 것이 국민의 뜻을 따르는 것이고, 또 이것이 이 정부와 대통령을 위하는 것이라고 안상수 대표최고위원이 말했다"고 밝혔다.

정 후보자 사퇴 촉구로 이 대통령의 레임덕이 회자되는 상황에서 정치권은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가장 먼저 나오는 분석은 당 지도부의 기강 다잡기를 위한 안 대표의 포석이라는 것이다. 홍준표 최고위원과 친박계인 서병수 최고위원 등이 안 대표에게 사사건건 딴죽을 걸고, 정두언 최고위원이 '부자 감세' 등 당론에 반하는 주장을 거듭한 데 이어 나경원 최고위원도 숙성되지 않은 '공천개혁안'에 대해 기자회견을 먼저 여는 등 한나라당 지도부는 사분오열된 모습을 노출했다. 이에 당 지도부가 단합하면서 일치된 모습을 보여주는 계기가 필요했는데 정 후보자에 대한 부적격 판정이 제격이었다는 얘기다. 특히 보온병, 자연산 발언으로 이미지가 실추된 안 대표로서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안 대표는 이와 관련, 다소 논란이 있지만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가래로 막을 것을 호미로 먼저 막았다"는 얘기도 나왔다. 원래 정 후보자에 대한 부적격 판정을 당내 소장파 모임인 '민본21'이 지난주 표명했고, 13일로 예정된 의원총회에서도 일부 의원들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할 계획이었는데 미리 차단했다는 것이다. 당 지도부가 정 후보자를 껴안고 청문회까지 가기에도 험로가 겹겹이 놓여있어 버거웠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청문회를 통해 안게 될 정치적 부담을 덜기 위해 당 지도부가 먼저 치고 나섰다는 얘기다.

정치권은 또 '정동기 카드'를 버려 4월 재보궐선거에서 야권의 공격을 사전차단해야 한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재보선은 내년 총선과 대선의 징검다리로 민심이 악화할 경우 여당으로선 총선 승리와 정권 재창출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공산이 크다. 4월 재보선에 질 경우 '당 지도부 조기 사퇴' 여론이 나올 수밖에 없고 큰 정치 일정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여당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나라당이 이 대통령이 표방하고 있는 '공정한 사회'를 실현하면서 '차떼기 정당'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청와대와 척을 지더라도 정 후보자를 거부하는 용단이 필요했다고 보고 있다.

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