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더불어 사는 삶' 강조하는 대구광역시지체장애인협회장

"중학교 3학년 때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를 잃고 고향인 충북 보은에서 1971년 대구로 왔습니다. 몇 년간 직장생활을 하다 사업에 뛰어들었지만'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사업상 견학할 필요가 있는 공장 방문을 거절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설움도 컸지만 종교적 신앙심으로 이를 극복하며 사업체 운영에 매진했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2년과 2004년엔 뇌졸중과 고관절 부상으로 심한 중도장애를 또 겪었습니다."

(사)대구시지체장애인협회를 맡고 있는 김창환(61) 회장의 인생역정이다.

"느닷없이 찾아온 저의 중증장애가 돈보다 봉사에 더 전념하게 만들었죠. IMF 때 남들은 모두 어려움을 겪는데 사업이 오히려 번창했어요. 하나님의 축복이자 은혜라는 생각이 들었죠."

김 회장은 2005년 지체장애인협회장을 맡고부터 사비를 털어 매년 여름 협회회원 1천여 명을 장사해수욕장으로 나들이하게 했고 매년 추석과 설에 떡국과 송편 보내기, 고령의 장애인을 위한 노인잔치를 열고 있다.

우리나라 장애인 수는 전체 인구의 약 7, 8%로 이중 지체장애인이 약 70%를 차지하며 대구시의 장애인은 약 17만여 명. 이중 협회에 등록된 회원은 1만2천여 명이다.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에 비해 애환이 많고 정서가 메마르기 쉽죠. 이 때문에 남에 대한 이해나 사랑, 칭찬하기에 인색하고 시기나 질투가 많습니다. 하지만 비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 변해야 합니다."

김 회장은 장애인의 성마른 정서를 달래는 데 힘쓰고 있다. 기회 있을 때마다 장애인들을 격려하고 있고 이달 초엔 정서상의 장애극복을 위해'마음을 달래는'책 300권을 구입해 대구지역 8개 구·군지회에 비치했다.

"과거 장애인 각 단체들은 비장애인들로부터 불신을 많이 받았어요. 장애인 단체들의 난립과 각종 후원금 및 지원금에 대한 비공개와 불투명한 집행이나 물건 등을 강매한 결과였죠."

김 회장은 이 때문에 대구시지체장애인협회장을 맡고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투명한 협회운영이었다. 김 회장은 취임 이후 정부가 정한 사회복지재무회계규칙에 따른 예산집행과 회계 내용을 연말에 모두 공개해 왔다. 김 회장은 여러 사업을 하다 보면 늘 예산부족에 시달리지만 김 회장은 사비로 충당하기도 한다.

그가 가장 역점을 두고 시행하는 사업은 중증장애인 주거개선 사업과 지체장애인 편의시설 대구지원센터 운영이다. 특히 김 회장은 올해부터 회원 배가운동과 장애인 편의시설에 관한 '시민촉진단'을 강화·확대 운영하는 데 노력할 예정이다. 또 장애인 편견에 대한 비장애인 인식개선 캠페인도 연 2회 실시해 왔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대구시내 일원 횡단보도 교통신호등 조작스위치의 낮춤(지상에서 1.2m이내)이라든가 도시철도 2호선 내 플랫폼과 전동차에 휠체어 전용마크 부착, 휠체어 회전반경을 위한 경사로 폭 확장 등 많은 부문에서 장애인을 위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그동안 장애인을 위한 사회 인프라 사업이 꾸준히 진행돼 왔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한 실정이죠."

그는"도시철도 1호선의 경우 장애인 접근이 쉽지 않고 굴곡이 심한 인도의 경우 휠체어가 다니기에 불편해 장애인들에게는 위험한 도로가 많다. 덧붙여 나들이 콜택시의 경우 서비스 체계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장애별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들을 다룰 수 있는 사전 교육도 미비한 실정"이라고 귀띔했다.

김 회장은 1998년 소년소녀가장과 홀몸노인 돕기와'생맥회'라는 봉사단체를 이끈 공로로 달서구민상을, 2007년 전국에선 처음으로 대한장애인체육대회 대구시장애인체육회를 발족한 공로로 대구시민상을, 2008년엔 국민포장 석류장을 수상한 바 있다.

"나 스스로 장애인으로서 어려움이 많았지만 신앙인으로 살면서 베풀고 나누며 사는 것이 제 삶의 목표입니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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