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이우환 미술관 건립보다 시급한 것

지난해 늦가을, 갑자기 이우환미술관 건립에 관한 화제가 대두 (매일신문 2010년 11월 22일자 보도) 하여 대구 미술계를 강타하였다. 이후 갑론을박의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미술계는 점점 더 큰 혼란에 빠지고 있다. 대구시에 이우환미술관이 생김으로 해서 국내외적으로 일종의 랜드마크로 인기몰이를 할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미술 문화라곤 제대로 없는 척박한 도시의 오명도 벗을 터이고 문화 환경의 개선과 시민의 삶의 질까지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본다면, 당연히 이우환미술관 건립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을 직시한다면 '당위성'의 논리는 많이 부족하다.

그 이유로는 첫째, 250만 대구시민이 지금까지 그토록 열망해 왔던 대구시립미술관 개관을 이제 불과 몇 개월 앞둔 시점에서 대구시의 편의주의적 관료주의 행태들이 거꾸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시 재정이 부족하여 시립미술관 건립도 거의 10여년이나 걸려 건축하면서 대구시 예산은 불과 150억원에 그치고 민간투자 550억원을 끌어들여 지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무리수에 따른 부작용이 생겨나 미술관 개관도 하기 전에 예식장이 개장되는 등 이해하기 힘든 행태가 한두 건이 아니라고 듣고 있다. 게다가 원래 미술관의 생명은 소장하고 있는 미술품의 질과 내용이다. 국내의 시'도립 미술관 중에서도 가장 늦게 건립되는 대구시립미술관의 소장품 중에는 대구의 얼굴이라고 해야 할 이인성 선생이나 이쾌대 선생 작품이 거의 없다시피 한 정도이다. 더욱이 대구시가 주최 주관하고 있는 이인성 미술상 행사가 벌써 십여 년이 지나는 사이에도 제대로 된 이인성 작품 한 점도 구입하지 않은 채 시상에만 급급, 도대체 누구의 명예를 높이려고 주최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지금까지 시상 행사에 든 비용만 해도 거금이었을 터인데, 그런데 쓰는 돈으로 10년 앞을 내다보고 차라리 작품을 구입했었더라면 이런 망신은 면할 것이 아닌가?

둘째, 작년 초 대구시립미술관 관장을 공모하였을 때도 많은 잡음이 들끓은 것으로 알고 있는 바, 이제 개관을 목전에 두고서 개관 준비를 위해 밤낮없이 바쁘게 돌아가야 할 학예연구원 숫자조차 제대로 채우고 있지 않다고 한다. 이유는 늘 말하는 예산 부족으로, 연구원 몇 명 쓸 인건비조차 제대로 지원치 못하는 어려운 상황 아래 있는 대구시가 도대체 무슨 예산으로 이우환미술관을 짓겠다고 공언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우환의 작품 가격이 연일 경매시장에서 상종가를 갈아치우고 있는 현실을 눈앞에 두고 어떻게 이우환 작품들을 소장할 것인지 의문이다. 나아가 '이우환과 친구들' 이란 미술관의 이름을 보건대, 그 '친구들' 은 소위 말해 뛰어난 세계적인 모노파 작가나 미니멀리스트 작가들을 지칭하고 있다. 현재 세계 미술시장에서 그들의 작품 가격은 국내 작가들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그림 가격들이다. 게다가 세계적인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다고 하는 데 필자로서는 전혀 납득되지 않는 사실들뿐이다.

끝으로 부언하지만 이인성과 이쾌대 선생은 대구 근대 미술의 선각자란 한계를 벗어나 대한민국 근대 미술의 최고 작가들인 바 이 작가들 작품도 제대로 소장하지 못한 채 시립미술관 개관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오로지 부끄러울 따름이다. 이러한 현실을 두고 이우환미술관 건립 운운하는 것 자체가 도무지 사리에 맞지 않을뿐더러, 일의 우선 순위에도 맞지 않는다. 아무쪼록 대구시 당국의 좀 더 깊이 있고 신중한 처리를 기대한다.

그리고 이제는 이 고장에 뼈를 묻을 미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시립미술관 개관에 앞서, 미술품 구입을 위한 캠페인을 벌여서라도 성금을 모아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열악한 시 재정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우리 '대구 문화 예술의 자존심'을 위해서 뜻있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뜨거운 호응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또한 이를 제대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언론 매체들의 적극적인 동조가 필요할 것이라 믿는다.

김태수 맥향화랑 대표·한국화랑협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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