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호모 헌드레드

오래 건강하게 사는 것은 인간이 늘 꿈꿔온 일이다. 세계 최장수국 일본에서는 노인들 사이에 '건강하게 살다가 주변에 폐 끼치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날 수 있게 해달라'며 전국 유명 사찰을 돌며 기원하는 여행 상품이 인기를 모을 정도다.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천복쯤으로 여겼던 '100세 장수'가 보통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를 학계서는 '호모 헌드레드'(Homo-Hundred)라는 용어로 정의하고 있다.

각종 조사 자료와 예측도 이를 뒷받침한다. 일본 노인의학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2007년 87세 노인의 체력과 건강이 1977년 70세 노인과 비슷했다. 30년 새 17년이나 젊어졌다는 말이다. 역산하면 2011년 70세 노인의 신체적 능력은 30년 전 53세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내놓은 '글로벌 2020 트렌드 보고서'도 세계 31개국의 기대수명이 80세를 넘어섰고 100세 노인 인구도 급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대로라면 2050년 무렵 세계 인구의 22%가 60세 이상이 될 전망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 법률에 명시된 노령자 기준은 '55세'다. 1970년대로 치자면 38세 청년과 신체적 역량이 같은데도 노인 취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도 이 기준이 현실성이 없다고 판단해 '55세 장년'으로 바꾼다고 한다. 50세 이상을 '장년'으로 표기하기로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노인 기준이나 규정이 어떻든 문제는 퇴직 후 30~40년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점이다. 먹고살기 위해 작은 사무실에서 30여 년을 보낸 호모 오피스쿠스(Homo-Officecus)에게 호모 헌드레드는 또 하나의 큰 장벽이다. 노후 준비가 제대로 안 된 이들에게는 퇴직 후 30~40년은 큰 걱정거리다. 노후를 지탱하는 경제적 기반과 건강'취미 등이 당면 과제가 된 것이다. 학자들이 "고령화 논란의 핵심은 돈"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국가 정책이나 개인의 노후 대책에서 경제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흔히 노년을 '제2의 인생'이라고 부르지만 노년이 자칫 재앙이 될 수 있다. 말로만 고령화사회를 걱정할 게 아니라 국가 정책은 물론 개인도 자신의 노후 대책에 관심을 갖고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싫든 좋든 현대인은 인간 역사에서 '호모 헌드레드'의 신기원을 이루는 주인공이 됐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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