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저민 클라인 허니컷 지음/김승진 옮김/이후 펴냄
1985년 2월 8일, 미국 미시간 주 '켈로그' 공장(시리얼 제조 공장) 옆 주점에 50여 명의 노동자들이 모였다. 이들은 팔에 검은 완장을 두르고 종이로 만든 가짜 관 앞에서 '6시간 노동제의 죽음'을 선언했다.
55년 전인 1930년, 켈로그의 소유주인 W.K 켈로그는 시리얼 공장 근무를 기존의 8시간 3교대제에서 6시간 4교대제로 바꿨다. 대공항으로 실업자가 속출하던 때, 켈로그와 경영진은 교대조 하나를 통째로 추가함으로써 미시간주의 도시 배틀크리크 지역의 해고 노동자와 실업자를 위한 일자리를 만든 것이다.
6시간 노동제는 당시 전국 언론과 허버트 후버 행정부의 관심을 끌면서 성공을 거뒀다. 전국의 저명한 기업가와 노조 지도자, 배틀크리크 지역의 인사와 노동자들 역시 대환영했다. 전 세계의 논평가들 역시 켈로그의 6시간 노동제라는 실험이 불황 타개를 위한 현실성 있는 대책이라고 평가했다. 그 뒤 몇 달 동안 지역 신문들은 "금세기(20세기) 말이면 노동 시간이 최대 2시간으로까지 줄어들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고, "각급 학교는 현실을 직시하고 학생들에게 여가를 가치 있게 사용하는 법을 교육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워싱턴 교육 당국자의 언급을 인용해 보도하기도 했다. 1930년대 미국 노동자들의 3분의 2가 6시간제를 강력하게 지지했다.
그러나 2차세계대전 초기 전시 조치의 일환으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노동 시간을 늘릴 것'을 요구했다. 대통령령에 따라 켈로그 공장은 8시간 3교대를 시행했다. 노조는 강력 반발했고, 경영진은 전쟁이 끝나면 6시간 노동제로 돌아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경영진은 '8시간 노동제로 남을 경우 금전적 보상을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돈이 더 필요한 노동자와 6시간 노동을 원하는 노동자들이 분열됐고, 그 뒤 40년에 걸쳐 투표를 통해 한 부서씩 한 부서씩 8시간 노동제로 옮아갔다. 가정을 부양해야 했던 남자들이 8시간 노동제를 더 많이 선호했다. 마지막까지 6시간 노동제를 주장했던 노동자(여성이 4분의 3이었다) 530명도 1985년 2월 항복했다.
책 '8시간 VS 6시간-켈로그의 6시간 노동제'는 6시간 노동제의 탄생과 사망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근무 시간과 여가 활용에 대한 서로 다른 인식에 관한 이야기다.
6시간 노동제가 종말을 고한 1차적 이유는 경영진이 늘어나는 비용을 부담스러워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일자리를 나누고 여가를 늘리기보다 풀타임으로 일할 권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진정한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였다. 6시간 노동제가 지지받던 초기에 8시간 노동제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일돼지'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8시간 노동제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6시간 노동제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게으름뱅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삶의 방식에서도 '여가와 자유와 해방'을 우선했던 분위기는 '노동의 신성한 가치'를 선호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6시간 노동제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여가를 '삶에서 가장 진지하고 풍성한 활동이 벌어지는 시간이자 자유와 통제력을 누리는 시간'이라고 생각했고, 8시간 노동제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여가는 하찮고 무의미하고 공허한 낭비'로 인식했다. 여기에 상업적이고 소비지향적인 여가가 확대되면서 여가 시간은 더 이상 진취적이고 창조적인 개인의 활동시간이 아니라 소비를 추구하는 수동적이고 공허한 시간이 되었다.
이 책은 몇 가지 관점에서 읽을 수 있다. 그저 6시간 노동제의 탄생과 종말 과정으로 읽을 수도 있고, 성장지상주의를 추구하는 자본의 논리로 읽을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자본만능주의의 확산에 따른 진취적 여가활동을 잠식하는 소비 지향적 여가에 대한 문제 제기로 확대해 읽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노동시간 단축이 모든 노동 문제의 해법은 아니다. 오히려 신자유주의의 '노동 유연화 전략'과 맞물려, 노동자의 위치를 더욱 유연하게, 대다수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만들 수도 있다. 철학적으로 보자면 6시간 노동의 몰락은 성장이 삶의 참여적 가치와 개별적이고 다채로운 여가를 위축시킨 면이 강하다. 지은이 벤저민 클라인 허니컷은 미국 아이오와 대학의 여가학과 교수다. 392쪽, 1만8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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